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딴짓의 결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베토벤은 심지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우산이나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성곽의 큰 공원을 산책했다. 산책하지 않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소와 에머슨, 키르케고르는 산책할 때 반드시 작은 노트를 챙겼다고 한다. 걷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리바이어던》을 쓴 영국의 철학자 홉스는 지팡이 끝에 아예 작은 잉크병을 집어넣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궁금하기 짝이 없다. 창밖을 내다보거나 밖에 나가 자연을 바라보며 산책하면 왜 머리가 더 잘 돌아가거나 생각이 더 잘 떠오를까?
사람들은 뭔가 그럴싸한 것이 있어야 시작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작품은 그런 식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작품은 우연의 산물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안 될 때 산책을 자주 한다. 앉아만 있는다고 글이 써지는 것이 아님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는 것보다 뭔가 다른 행동을 할 때 아이디어가 자주 찾아왔다.
글감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였다. 글감 아이디어는 의외로 딴짓을 할 때 많이 떠올랐다. 내 경우는 샤워를 할 때, 유튜브 영상을 볼 때, 드라마를 볼 때, 산책 다닐 때, 사람들과 수다 떨다가 발견할 때가 많다. 아이디어가 뿅 하고 떠오르면 하던 행동을 멈춘다. 그리고 메모한다. 이게 포인트다. 만약 떠오른 생각을 바로 메모하지 않으면 다시 영감이 찾아올 때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 영상을 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메모한다. 드라마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산책하다 떠오르면 걷기를 멈추고 스마트폰에 메모한다.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가 아이디어가 발견되면 화면을 캡처하거나 카카오톡 나에게 메시지를 남겨둔다. 이렇게 모은 메모들은 다이널리스트(Dynalist) 앱에 따로 모은다.
왜 원할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이유는 바로 내 안의 ‘지켜보는 자’가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행동하는 자’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한다.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쉬지 않고 혼자서 계속 떠드는 사람에겐 빈틈이 없다. 이러면 ‘지켜보는 자’는 말을 건넬 수 없다. ‘지켜보는 자’가 말할 틈이 생겨야 비로소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 하던 말을 멈추고 행동을 멈추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지켜보는 자’는 이야기를 시작하다. ‘지켜보는 자’는 ‘행동하는 자’가 침묵하고 있을 때 말을 건넨다.
역설적이게도 사실이 그렇다. 아이디어는 내가 필요할 땐 찾아오는 법이 없다. 필요할 때 찾아와 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웬만해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떠올리려 하면 안 떠오르다가 딴짓, 딴생각, 다른 행동을 할 때 찾아오니까 말이다. 혹시 책상에 앉아 뭔가 안된다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책상을 벗어난 딴짓을 해보길 권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비밀은 바로 딴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