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식도 10분 안에 손님상에 올리기

셰프의 속사정 (1)

by 오류 정석헌

"배달 여기요, 배달 여기요, 배달 여기요."


조용하던 가게에 배달 주문 소리가 가득 찼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였다. 주문 소리가 울린 건 밤 11시 정각이었다. 코로나로 거리 두기 완화 조치로 배달 주문이 1/5로 줄어든 7월 마지막 밤이었다. 주문 소리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들뜬 기분을 선물했다. 홀 테이블 정중앙에서 홀로 앉아있던 고솊 용수철처럼 튕기듯 주방으로 향했다.


'사시미 2인 세트에 우니 추가.'


계산기 앞에서 주문을 확인한 고솊은 신났다. 자신의 이자카야 대표 메뉴기도 했고 가장 자신 있는 메뉴였으니까. 익숙하게 숙성 냉장고 아랫칸에서 생선을 꺼냈다. 선반 위에서 일회용 용기 하나를 꺼내 자신의 왼편에 올려놓았다. 사시미 칼을 꺼내자 칼도 끄르르 반기는 소리를 냈다.


광어 지느러미부터 시작했다. 다음은 생새우 다음은 도미 뱃살. 20년 차 셰프는 한치의 망설임도 칼을 움직였다. 마치 그 동작은 절도 있는 무예 같았다. 불필요한 동작 따윈 없었다. 절도 있는 동작 하나에 생선들은 하나 둘 좌로 누웠다. 그렇게 사시미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고추냉이 그리고 간장까지 포장 용기 위에 가지런히 올리니 근사한 2인 세트 하나가 완성됐다. 이제 마지막으로 화룡 정점 우니만 추가하면 끝이었다. 어제 남해에서 올라온 싱싱한 우니 박스에서 우니 1팩을 꺼내 담았다. 준비부터 포장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분도 넘지 않았다. 고솊 철칙은 주문 후 어떤 음식이라도 10분 안에 손님상에 올리기였다.


'이 정도면 생활의 달인 수준인걸. 역시, 난 손이 빨라.'


배달 오토바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전에는 주문 접수되자마자 1분도 안되어 들이닥치던 배달 기사들이 오늘은 굼벵이를 삶아 드셨는지 음식 준비가 끝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올 때 되면 오겠지 하고 음식 포장을 배달 기사들이 픽업하기 좋은 입구 쪽으로 옮겨 놓았다. 주방을 나와 다시 테이블에 앉아 TV에 눈을 고정했다.


10분쯤 흘렀을까. 오토바이 소리는 여전히 들리질 않았다. 어찌 된 영문일까. 시선을 창문으로 향해 비가 오나를 살폈다. 하루 종일 하늘에 구멍 난 듯 내리던 비는 밤이 돼서야 잠잠해졌다. 비가 와서 배달 주문이 많은 것일까. 고솊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처음과 달리 마음속에 불평의 목소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얼마 전 손님의 악평 사건이 떠올랐다. 처음 받은 악평에 너스레 떨며 답글을 달고 겨우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악평 하나는 곧바로 장사에 영향을 미쳤다. 처음엔 곧 괜찮아지겠지 하며 넘겼는데 어느 날부터 주문도 줄고 배달도 지연됨을 느꼈다. 결국 인터넷에서 관련 검색을 한 뒤 충격적 사실을 확인했다. 불평 댓글은 배달 페널티로 이어진다는 어느 블로거의 검증되지 않은 글을 읽고서부터였다.


초초는 계속 커졌다. 1초가 10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걱정은 무한 증식되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이 당할 터였다. 손 놓고 있다간 불평 댓글은 예정된 결과였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나라도 직접 배달을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결심은 행동을 촉구했다. 직접 배달을 결심하고 주문 접수대로 다가선 그때 일이 터졌음을 알아차렸다.


주문에 정신 팔려 배달 수락을 누르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시계는 어느새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문 들어온 지 30분. 망했다. 지금 배달 수락 버튼을 누른다면 앞으로 최소 5분, 최대 20분은 기사 배정에 소요될게 뻔했다. 하지만 일단 배달 앱으로 들어온 주문이라 눌러야 접수가 되고 나중에 결재도 받을 수 있었다. 눈을 꽉 감고 배달 수락을 누르려는데 순간 머릿속에 꼼수가 하나 떠올랐다.


배달 수락에는 배달 기사만 볼 수 있는 메시지 한 칸이 있다. 그 공간에 특별한 메시지 하나를 적기로 했다. 죄송한데 제가 배달 수락이 늦어져서 벌써 주문 들어온 지 30분이 지나서 손님이 엄청 기다리고 계실 건데 그래서 이 배달은 다른 데 들르지 말고 바로 가주서야 해요. 정말 급해요라고 솔직하게 적진 못하고 대신 '살려 주세요.'라고 적었다. 이렇게 적으면 자신처럼 마음 착한 배달 기사가 나타나 이 위기 상황을 해결해줄 것만 같았다. 이런 꼼수를 생각해낸 자신을 기특해하며 '살려 주세요.'라고 특별 메시지 하나를 적은 뒤 수락 버튼을 눌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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