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했던 오븐의 기억

아무나베이킹 #1. 마들렌

by 겨울가지

'언젠간 나도 빵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오븐 기능이 추가된 오븐레인지를 샀었다. 더 비싼 돈 주고. 정확히 3년 전에.


나에겐 '오븐'이 주는 막연한 따스함이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쿠키를 구울 때면 옆에서 괜히 밀가루를 뒤적거리고, 몰래 설탕을 한스푼 더 넣어보곤 하던 기억 때문인지 '오븐'과 '베이킹'은 언젠가 내가 꼭 해보고 싶은 영역 중 하나였다.


실제로 빵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오븐으로 빵을 만든다는 그 행위 자체가 주는 따스하고 정감가는 느낌이 있다.

물론 뭔가 있어보이기도 하고.


어릴 적 기억은 그 따스했던 추억일 뿐, 베이킹의 ㅂ자도 모르는 나는

'초보 베이킹' '첫 베이킹' '쉬운 베이킹' 등의 키워드로 내가 도전해볼 만한 빵이 뭘 지 고민해본다.

"공부가 가장 쉬웠던" 장승수 슨생님처럼 인터넷 슨생님들이 알려준 가장 쉬운 빵은 하나같이 '마들렌'.


마들렌이라면 내가 하루에도 4-5개씩 먹고

재택을 하는 날이면 쿠*이츠로 매일매일 주문해먹고

단지 커피를 사러갔을 뿐인데 꼭 카운터 옆엔 탐스러운 마들렌이 있어 한두개씩은 꼭 주워들게 만드는..

그 마성의 마들렌 아닌가?


근데 마들렌이 가장 만들기 쉽다니.

횡재한 기분일 수밖에.


이제 나는 횡재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폭풍주문 해댄다.


[온라인 '마들렌' 레시피]

달걀 2개

설탕 90g

버터 100g

밀가루 100g

베이킹파우더 3g


간과하면 절대 안되는 것이, 보통 레시피에 적힌 레시피는 진짜 레시피가 아니다.

예를 들어 달걀은 너무 크면 안되고 대충 중간 사이즈로, 미리 상온에 꺼내둔 달걀이어야 한다.

버터 또한 '적당히' 녹아야 하는데 전자렌지에 팡팡 돌려서 너무 뜨거워선 안된다. 또 너무 식어도 안된다.

밀가루? 밀가루도 중력분/박력분 구분을 해놓는데 난 그런거 모르겠고 그냥 유럽밀가루라고 나온 좀 있어보이는 거 샀다. 그나마 간단했던 건 베이킹파우더 정도가 되겠다.


[내가 만든 '마들렌' 레시피]

달걀 2개

설탕 6숟가락(덜채운)

무염버터 200g짜리 반띵

밀가루 6숟가락(꽉채운)

베이킹파우더 티스푼1

바닐라액 4방울


베이킹의 생명은 계량이라고 하지만,

난 전자저울도 전문적인 오븐도 없었기에 운에 기대며 정성껏 대충 계량했다.

망해봤자 첫 베이킹인데 뭐-


그런데 결과는?


대.성.공.



아 물론, 마들렌은 구워질 때 배꼽이 잘 튀어나와야 성공적인 것이라고들 하던데

나에게 진정한 마들렌은 '마들렌 맛이 나는 맛있는 빵' 정도였던 차이는 좀 있겠다.


사먹던 마들렌보다 크기는 좀 작고 배꼽도 안튀어나오고 덜 달았지만,

갓 구운 마들렌은 바삭하고 적당히 달고 포슬하고 따뜻하고 그야말로 존맛탱이었다.

왜 다들 그 귀찮은 계량과 은근히 돈 더 드는 재료비를 마다하고 홈베이킹, 홈베이킹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원래 마들렌은 부드러운 맛에 먹는거라지만,

난 갓 구운 마들렌의 그 따뜻하고 바삭한 맛이 좋았다.


늦게 시작한 탓에 밤 11시가 되어서야 맛을 볼 수 있었지만,

늦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4-5개는 거뜬히 먹어치워버렸다.


충분히 맛 본 후에는 한 김 식혀 낱개 포장을 주변에도 몇 개 나누어주었는데,

베이킹의 진정한 맛은 '갓 구운 맛' 그리고 '나눔'이었다.

전문적이지도 않고 별 거 아닌 마들렌이지만 너무나도 고마워하며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며

그 갓 구운 따스함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내게 '오븐'이 주는 따스함은 180도가 넘는 그 자체로의 온기도 있지만,

좁은 주방에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엄마와 하하호호 밀가루를 체치던 기억,

1초가 멀다하고 오븐 안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들떠있던 기대감,

갓 나온 쿠키를 맛보며 이러쿵저러쿵 맛에 대해 떠들던 시간들,

엄마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시간들의 결정체였던 것 같다.


뜨겁게 달아오른 오븐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그 속에서 부풀어오르는 빵과 같이 부풀어오르던 그 기대감을 잊지 않아야지.


베이킹은 진짜 아무나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