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ㅁㅊ 이어폰 두고 옴

이어폰 없인 한 발자국도 안 나가는 분 계시죠? (바로 접니다)

by 겨울가지

집을 나섰는데 이어폰을 안가져왔음을 깨달았다면,

다시 되돌아가실 건가요?


에어팟이든 줄이어폰이든,

뭔가를 귀에 꽂아야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있다.

특히 대중교통을 타고 꽤 이동을 해야한다면 더더욱.


사건의 발단

지난 주말, 나에겐 편도만 약 2시간을 이동해야하는 일이 있었다.

버스시간 맞춰 호다닥 집을 나섰는데, 이거 웬 걸-

에어팟이고 줄이어폰이고 뭐고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이다.


"아 망했다."


하지만 되돌아가기엔 빨간버스 시간이 곧 다가오고 있었고

특히나 주말에 빨간버스를 한 번 놓치면 기약없는 기다림이 예정되어있기에

주먹 한 번 꽉 쥐고 그대로 길을 나섰다. 이어폰 없이. 쌩귀로.


색다른 경험

아아아 너무 너무 허전했다.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길거리의 차소음과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너무 잘 들렸고

버스를 탔는데 다음 정차역 안내소리와 잔잔한 라디오소리,

앞문과 뒷문이 삐익-철컥 삐익-철컥 닫치는 소리 하나하나가 생생했다.


이어폰을 껴고 듣고 싶은 음악을 플레이한 순간엔

주변이 사악 줄어들고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는데

쌩귀의 나는 마치 사회에 첫 나온 것 마냥 조금은 불안하고 주변을 많이 의식했다.


나이도 먹을대로 먹었는데, 고작 이어폰 없이 이러는 게 말이 되는가?

..싶지만 정말 좀 그랬다. 이런 게 디지털 중독인가 싶기도 하고 -


이어폰이 없으니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도 어렵고

폰 게임을 하는데도 사운드가 없으니 너무 심심한 기분이라 금방 그만두곤 했다.


더 나은 집중

그러다보니 버스 앞자리에 걸터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이 많았고

창밖의 분주한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하나하나에 집중이 되고

앞차의 차선변경과 자동차 모양, 운전습관 등등의 사소한 것들이 다 궁금하고 재밌어졌다.


'오 버스 기사님은 저렇게 앞뒷문을 여시는 구나'

'오 저기에 못 보던 가게가 생겼네. 다음에 가봐야지'

'저 차는 새로 나온 모델인가?'


등등 귀는 잠깐 심심했지만, 머릿속은 더 풍성하고 다채로워졌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음악에 집중하면 오롯한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도 좋지만,

주변의 소리를 생생하게 들으며 일종의 소속감(?)같은 것을 느끼며

그래 나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구성원이다. 는 느낌을 담뿍 받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사실 우린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고,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데,

어느순간 길거리엔 이어폰을 끼지 않은 사람이 없고 휴대폰을 보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낯선 이들과 눈인사 정도도 하지 않을 정도로 바쁘고 철저히 고립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이어폰 빼고 휴대폰 주머니에 넣고 주변에 '날것으로' 집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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