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he Flight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Eun Feb 13. 2016

The Flight_3

<3> 마치 로컬인양

<3>


 여행지에서 맞는 첫 아침은 생각보다 느긋했다. 원래도 꼭두 새벽부터 일어나 돌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거니와 아무도 깨워주는 사람이 없으니 더 했다. 주섬 주섬 씻을 거리를 챙겨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머리를 다 말리고 방으로 가는 길,

'깜짝이야!'

호스텔은 워낙 공용 공간이 많아 누구와 어디서 부딪혀도 별로 놀라지 않아야 하는 건지, 한 남자 게스트가 티셔츠 없이, 츄리닝 바지만 입은 채 수건만 어깨에 걸치고 지나친다. 아 그래 오픈 마인드. 나도 놀라지 않은 척 무심코 지나갔다.


나갈 채비를 다 하고 나서는데, 아까 그 남자가 그 채로 호스텔 입구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역시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사를 건넸다.


"Good morning!"

"Good morning."


"Hi, I'm Bo-eun. Where are you from?"

"I'm Paul from Canada, actually I'm Chinese canadian. and you?"


"Oh, right? I'm from Korea. Nice to meet you!"

"Nice to meet you, too."


중국계 캐나다인이라는 수건만 걸친 그와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뻔한 대화를 끝내고, 서둘러 호스텔을 나섰다. 볕이 좋아 보이는 날씨에 얼른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은 탓이었다.


"Then, have a great day" 라는 인사를 남기고, 문을 나섰다. 햇빛이 환하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많이 걸어 다니고, 많이 보고, 그러나 로컬처럼 다니자. 딱히 꼭 가야되는 곳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갑자기 가고 싶어지는 곳으로. 타이페이는 서울처럼 지하철이 워낙 잘 돼있고,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기에 나는 어렵지 않게 로컬처럼 여행지를 찍으면서 다닐 수 있었다.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 헐리웃 영화 중 아무거나 보겠다며 무작정 영화관에 들어가기도 했다. 혼자여서 아쉽다고 느낀 두 번째 순간이었다. 혼자 영화 보기는 서울에서도 꽤 자주 했던 일인데도 불구하고, 여행지에서 혼자 영화를 보자니 조금은 청승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자 이내 잘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현지인 같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제대로 여행을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곳 사람들에 섞여서 이 사람들의 일상을 공유하는. 


 결국 나는 대만의 명물이라는 망고 빙수와 딘타이펑 딤섬, 야시장까지 섭렵하고 돌아왔다. 제대로 많이 걸었던, 그리고 참 한 일도 많아 길었던 하루였다. 그리고 역시 여행은 즉흥이라는 나의 신념을 더욱 확고하게 해 준 날이기도 했다. 걷다 보면 관광지가 나오고, 다시  조금 더 가다 보면 유명하다는 음식점을 우연히 찾게 되고, 쉬다 보면 또 가고 싶은 곳이 보이고. 그리고 누구든 질문만 하면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줄 기세로 알려주는 따뜻한 대만 사람들 덕택에 더욱 그랬다.


 다음 날 일정을 짜기 위해 간 리빙룸에는 이미 많은 게스트들이 모여 있었다. 한 쪽 테이블에서는 술을 안 마시는 타일러가 프랑스에서 온 스테판과 나에게 심리 테스트를 해줬고, 또 다른 쪽 테이블에서는 다른 몇몇 친구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내일 계획을 짜던 다이어리도 내려놓은 채 심리테스트에 빠져 있었다.         


"자, 네가 숲 속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봐, 뭐가 보이니?"


 이런 류의 한국식 심리테스트를 타일러는 열 개쯤은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마 그가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을 할 때 이걸로 학생들의 주의를 끌어 인기 선생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영어로 한국식 심리테스트를 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또 누군가 들어와 맥주파에 합류했다. 아마도 아침에 봤던 그 수건만 걸치고 있던 캐네디언인 거 같았다. 우리는 그러고도 삼십 분은 더 심리테스트에 열중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기에 그 캐네디언은 먼저 가서 자겠다며 우리에게 굿나잇 인사를 건넸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는 그에게 우리 또한 인사를 하고, 그리고 난 후에도 한 시간 쯤은 더 수다를 떨었던 거 같다.     


 기타도 치고, 서로 음악도 공유하고, 미드도 추천하며, 이런 게 호스텔에 묵는 매력이구나 싶었다. 내일 가려는 곳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지우펀'이라는 곳에 가고 싶었는데, 센과 치히로의 배경이 된 마을이었다. 산 위에 있는, 타이페이 시내에서 1시간이 좀 넘게 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가는 방법이나 먹을 것 등을 물어보았다. 


 꼭 가야 하거나 무조건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사진으로 보기에 썩 마음에 드는 모습이었기에 선택지 중에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온천을 갈까도 생각해서, 그곳과 관련된 정보도 물어보았다. 스파를 좋아하는 나는,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온천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럼 지우펀을 갔다가 스파를 다녀오면 알차고 내 취향에도 맞는 하루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새벽 2시까지 나의 심리를 계속해서 테스트하고, 여행지 정보도 듣다가 졸음을 가득 안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사람만 무려 6명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The Flight_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