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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e F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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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Eun Feb 13. 2016

The Flight_4

<4> In Common

<4>



다음 날 9시 반쯤 되었을까,


"딸, 아직 자니?"


라는 엄마의 카톡에 잠이 깼다. 아마 그 카톡이 아니었으면 전 날 늦게 잔 탓에 12시는 되어서야 일어났을 것이다. 이미 일찍 일어난 척 '좋은 하루 보내라, 나는 오늘도 잘 놀고 오겠노라' 답장을 하고, 부은 눈으로 샤워를 하러 갔다. 오늘은 뭐하지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잠에 취한 채로.     


 씻고 정신을 차리니 마침 호스텔에서 아침을 제공한다는 기억이 났다. 분명 몇 시까지라고 시간 제한을 보았던 거 같아서 리빙룸으로 가보니 빵과 잼,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무료 아침치고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다. 다만 나쁜 것은 날씨였다. 리빙룸의 통유리로 보이는 밖으로 주룩 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 날 계획한 지우펀과 노천온천은, 이 비 때문에 무리이겠다 싶었다. 식빵 하나를 입에 물고, 창밖을 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간다면 어디를 가야되나.


 사실 비가 오니 다 귀찮아졌다는 게 오히려 맞았다. 그저 앉아서 언제쯤 그칠 비일까 하릴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침 어제 그 캐네디언도 리빙룸에 왔길래 빵을 먹으라고 알려줬다. 그 빵이 호스텔에서 제공되는 건지 몰랐던 그는, 처음에 내가 왜 계속 빵이 아직 남아있으니까 먹으라고 권했는지 의아했다고 했다. 그러다 이내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감정 표현이 많은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조차도.    


 그도 크게 스케줄의 압박 속에 돌아다니는 건 아닌 거 같아 보였다. 이미 10시는 족히 된 시간에 일어나 오늘 무얼 할 지 뚜렷한 계획이 없이 여기 앉아 있는 걸 보면. 그렇게 우리는 가벼운 대화를 시작했고, 공통점이 많았고, 관심사가 비슷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같았고,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고, 카페에서 음악을 듣고 글 쓰는 일을 좋아했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캐나다 벤쿠버에 살고 있었다. 그 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홍콩인 아버지와 상해 사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광동어를 할 줄 알았다. 광동어만큼은 아니었지만, 중국어도 곧잘 하는 그였다. 한국어 친구도 많다 했고, 송아지 노래를 알고 있었다.

 그가 대만에 오게 된 건 친구 커플 때문이었다. 친한 중국계 캐네디언인 친구 둘이 벤쿠버에서 결혼을 했고, 그 둘은 홍콩에서 결혼식을 한 번 더 올렸다.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했던 홍콩에 항상 가보고 싶었던 그는 겸사 겸사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고, 대만에 셋이 함께 여행 온 차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호스텔에 묵고 있었다. 또 나와 비슷했다. 그리고 내일 그 커플은 일본으로 건너가 긴 허니문을 계속하고, 그는 캐나다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그의 이름은 폴이었다. Paul.    


오늘은 왜 그 커플과 같이 보내지 않냐고 하자 신부가 너무 많이 계속해서 먹으러 다니자고 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둘이 놀으라고 하고, 자기는 혼자 있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I'm serious."

진짜야.


라고 말하는 그가 귀여웠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그는 차를 즐긴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제 갔던 그 카페를 추천했고, 우리는 함께 나섰다. 생각지 못했지만, 유쾌한 동행이었다.  카페에 가는 길에 환전을 해야 한다는 그와 은행에 들렀다.


"I'd like to exchange money."

환전을 좀 하고 싶은데요.


 은행원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눈치였다. 폴에게 중국어로 환전을 '환 치엔'이라고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알던 터였다. 외국어에 흥미가 많았던 나는 중국어를 배우고, 급수를 따기도 했다. 그래서 환전같은 단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는 은행원의 중국어에서, '여권'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폴에게 은행원이 달라는 '후 쟈오'가 여권임을 알려줬다. 여권을 안 가지고 나왔다는 그였기에 내 여권을 보여주고 환전을 했다. 그는 내가 중국어를 할 줄 알아서 놀랐고, 나는 이런 상황이 재밌었다. 마치 시트콤 같은.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은행에서 나와 카페에 들어갔고, 마땅한 차를 팔지 않는 그 곳에서 둘 다 커피를 시켜놓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각자 어떤 일을 하는지, 대만에는 어떻게 오게 됐는지, 와서 무얼 했는지, 얘기하는 내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처음부터 말이 정말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전 남자친구랑은 왜 헤어졌냐는 질문에 '더 이상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서 헤어졌다.' 라고 했고, 전 여자친구랑 왜 헤어졌냐는 내 질문에 그는 "내가 그 남자"였다고 했다. 3년 반을 만난 전 여자친구가 더 이상 남자로 느껴지지 않고, 룸메이트로밖에 안 느껴진다며 헤어지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것도 뭔가 공통점인 것만 같았다. 모든 게 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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