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심리학 김경일 교수 온라인 강연 후기
한 번에 A to Z : 게임 문해 교육부터 포스트 코로나 대응까지?
하루에도 수 십 통, 읽지 않고 지우는 학원 광고 문자 사이에, 색다른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게임, 인간의 미래, 포스트 코로나, ’…. 인지심리학 교수로 방송을 통해 알려진 김경일 교수의 강연이 있다고 한다. 일단 예약 버튼을 눌렀다. 다음날, 자세히 살펴보니, “게임으로 풀어보는 인간의 미래, 부제- 포스트 코로나, 변화인가 가속인가”이다. 거창한 주제에 괜히 설렌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긴장감을 유발하면서, 한 발 앞서가는 현대인이 될 것 같은 기대감을 선사한다. 꼭 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제는 없던 문구가 보인다. ‘2020 보호자 게임 이해하기(리터러시) 교육 – 다 함께 게임문화 TALK!!’ 란다. (느낌표도 두 개를 사용했다) 어제 받은 문자와 문구의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리터러시- literacy 文解’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포스트 코로나 대응을 모색하는 것과, 게임이라는 용어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인 文解 강연, 이 둘의 갭은 너무나 크다. 심화 강연과 문맹탈출 강연이 함께 묶일 수 있는 걸까? 이 강연의 정체는 무엇인가? 단순한 행정상의 실수일 수 있으나, 어떤 강연이 펼쳐질지 기대하기로 했다. 게임의 개념 정의 A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는 방안 Z,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할 것이니 걱정은 않으련다.
그러고 보니, 게임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나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생각해본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 게임은 게임중독을 연상시키는 단어였다. 아이들의 게임문화와 나의 학창 시절 만화문화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할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게임을 오락과 혼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게임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을 인지하고, 아이가 게임의 단순 소비자가 아닌, 게임적인 요소를 잘 알고 활용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지금이지만, 게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어쩌면, 게임 리터러시 교육은 둘째 아들의 사춘기를 겪으며 체득한 게임에 대한 인식을 전문가의 도움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다음날, 강연은 실시간 채팅과 함께 재기 발랄하게 이루어졌다. 온라인 강의는 열의를 가지고 참여한 이들과 함께 할 때 빛을 발한다. 자발적으로 신청한 학부형들은 채팅창을 통해 적극적으로 리액션을 하고, 끊임없이 질문했다. 만약 대면 강연이었다면, 기껏해야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을 텐데, 채팅창을 통해 활발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강연자도 채팅창을 보며, 학부모의 성향과 관심사에 맞추어 수위를 조절할 수 있었으리라.
게임 중독이 많은 한국? 몰입을 잘하는 한국 사람!
‘게임’을 언급하니, 게임중독을 염려하는 학부형들의 의견이 수없이 올라온다. 역시나, 게임과 게임중독을 세트로 묶어 버리는 학부형은 여전히 많다. 김경일 교수는, 게임은 게임중독과 구분되어야 하는 개념이지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 사람들이 중독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그 원인으로 한국인의 ‘낮은 낙천성’을 꼽았다. 여기서 낙천성이 낮다는 것은, 많이 가져야 행복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볼 때, 아프리카 사람들은 게을러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적게 가져도 만족하는 낙천적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게으른 것과는 다르다고 한다. 오히려, 그들의 시각에서 우리는 많이 가져야 만족하는, 욕심꾸러기들인 것이다. 나는 내가 낙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벌려 놓은 일이 삼만리나 되는 것을 보니, 이보다 더 비 낙천적일 수 없겠구나 싶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낙천적이고 싶은 생각은 사라지고, 그렇지 않은 내가 좋아졌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비 낙천적인 나는 역시 단군의 자손이 맞다.
우리나라에 일 중독자가 많은 것은 낮은 낙천성의 증거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무언가 많이 하려 하고, 심지어 놀 때도 부지런하다고 한다. 놀이동산에 가서도, 자유이용권 끊었는데 이것밖에 못 노느냐고 혼내는 엄마는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유럽 심리학자들이, 한국인들은 복장만 관광객이고 행동은 근로자라며, 여행하러 왔는데 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조식도 안 먹고 다니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러니, 몰두를 잘하는 한국인들은 게임 중독뿐 아니라, 지적 활동을 수반하는 중독에 취약한 것이라며 학부형들을 다독인다. 엄청난 위안이 되지는 않았지만 안도할 수 있는 여유는 되어준다.
새로운 규칙은 언제나 ‘격렬한’ 저항을 받는다.
게임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을 부인하지 않지만, 앞으로는 게임을 한 번도 하지 않아도 바보가 되는 세상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게임은 시대의 흐름이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규칙의 적용을 받는데 팬데믹이 오든, 산업혁명이 오든, 새로운 것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너무 안 하는 것도 늘 문제가 되어 왔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인쇄술이 도입되던 산업혁명의 시대나, 새롭게 문자가 창제되던 시대 역시 많은 반발에 부딪혀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이 어떻게 공부가 되느냐고 하는 것은, 인쇄술의 도입으로 출판이 가능하게 된 초기에, 직접 필사하지 않고 인쇄된 글자를 읽는 것이 어찌 지식이 되겠느냐며 반발에 부딪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정보 습득의 새로운 플랫폼은 늘 기존 세대의 저항을 받아 왔다. 그러므로 ‘이러다가 다음 세대가 바보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이 플랫폼에 적응하지 못했구나’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한다. 늘 고민하던 한 가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새로운 세상의 아이들이 불안하면서도, 옥편을 찾고 프라임 영한사전을 찾는 것이 편안한 나의 사고가, 태어나자마자 손가락으로 화면의 크기를 줄이고 자르고 붙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아이들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지켜야 할 가치와 적응해 나가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던 것 같다.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녹색 버튼을 누르는 우리는, 빨간 버튼을 누르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여전히 텍스트 중심이 편안한 부모세대와 시청각 콘텐츠에 익숙한 자녀세대는 이렇게 다르다. 그들과 우리는 다르고, 살아갈 세상은 더욱 다를 것이다.
* 녹색 버튼 - 네이버 , 빨간 버튼 - 유튜브
A.I와 경쟁해야 하는 세대, 어떠한 경쟁력을 갖출 것인가
2016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구글(Google)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고 승리한 것이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사람뿐 아니라 A.I와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게 된 것이다. 역시나 대한민국 학부모는 빛의 속도로 대응하였고, 이는 그 해 대입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전국 예체능 학과의 커트라인이 수직 상승한 것이다. A.I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분야를 찾아, 예술 등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를 보고 자식의 대입에 반영하여 실천하다니, 대한민국 선배 학부모들의 발 빠른 대처에 경탄할 뿐이다. 그러나 이는, 마이크로 소프트사(MS)의 넥스트 렘브란트(Next-Rembrandt)의 출현으로 무참히 깨지게 된다. 그림 그리는 A.I가 300점 이상의 렘브란트의 그림을 데이터 베이스로 하여, 그의 그림을 똑같이 재현해 낸 것이다. 심지어, 렘브란트의 색을 수정하는 습관과 터치 방향까지 완벽하게 구현하여, ‘렘브란트가 살아 돌아와도 이보다 더 그 자신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는 탄식을 자아냈다고 한다.
예술성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며 반박할 근거를 찾으려는 찰나, 김경일 교수가 아직 좌절하기에는 이르다며 희망을 준다. 넥스트 램브란트가 피카소의 그림은 구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피카소 하면 떠올리는 입체파 작품은, 그의 전 작품 활동 후반 30%에 지나지 않고, 이전 70%에 달하는 그림은, ‘재능 있는 사람의 흔한 그림’으로 예상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데이터 A, B를 분석하여 A와 B 그리고 AB를 창출해 내는 A. I에게 30%는 70%를 능가하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에 비해, 우리 인간의 뇌는 A, B라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A와 B, AB를 도출할 뿐 아니라, 비판적 수용을 통해 새로운 C를 창출해 낼 수 있다고 한다. C를 도출해 내는 능력,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A와 B와 달리, C는 바로 게임적인 결합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존중하는 이타성, 새로운 C의 시작이 되다.
게임적 요소를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창조적 C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학부모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그런 아이로 키울 수 있나요? ’라고. 김경일 교수는 디지털카메라의 탄생을 이야기해 준다.
1975년 12월, 추억의 필름 회사 ‘코닥’의 직원 스티븐 사손에게 연구소에 견학 온 6살 꼬마가 ‘필름이 무엇인가요? ’라고 질문한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단순한 질문에, 공학자인 스티븐 사손은 ‘필름은 세상의 이미지를 담아 놓는 그릇’이라고 대답해 준다. 지금 들어도 멋진 대답이다. 숫자와 팩트로 무장한 이성적인 공학도가 이토록 감성적으로 필름이라는 단어를 풀어내다니! 스스로도 뿌듯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다. 사무실로 돌아온 스티븐 사손은 자신의 책상 위에 다른 많은 그릇들도 놓여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중에서 눈에 띄는 그릇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카세트테이프, ‘소리를 담는 그릇’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이미지와 소리를 함께 담은 그릇, 디지털카메라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숨겨진 역사의 조각은 언제나 재미있다. 여기에 김경일 교수는 교훈이 있음을 알려준다.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쳐 버렸을 수 있는 일을, 스티븐 사손은 어떻게 시대의 발명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그에게는 배려하는 이타성이 있었다. 그는 상대를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내주었고,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 설명하는 노력과 배려를 실천했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알려준다. 필름의 사전적 의미에는 그릇이 포함되지 않는다. 필름을 빛에 반응하는 화학처리를 한 물질이 아닌, ‘그릇’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는 것은 그가 은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고, 전혀 달라 보이는 것들을 연결시켜 주는 것, 이것이 은유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은유를 책에서 경험할 수 있다. 은유를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연결성을 찾아낼 수 있고, 찾아낸 연결성을 구현해 내는 사람은 즐거움, 재미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은 책도 많이 읽고, 게임도 많이 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절감하는 요즈음이다. 그리고, 새 책의 빳빳함도, 헌책의 농익음도 좋아하는 나는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재미를 경험해 본 아이들이 창조성을 갖는다
그러나 배려하는 이타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타성만 있으면 테레사 수녀님이 된다며, '재미'라는 요소가 더해져야 한다고 한다. 이타성에 재미가 더해질 때, 헌신이 아닌 창조가 이루어진다. 남을 도우려는데, 재미를 많이 경험해 본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창조’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재미는 단순히 장난이 아닌 매우 정교한 재미여야 하는데, 그것이 게임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우버’를 이야기한다. 우버가 지구 상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딱 5개국에서만 불법인데, 일단 우버가 합법화에 성공하면, 그 나라의 택시 산업을 초토화시켰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신기술이나 혁신, 편리함으로 가능했던 결과가 아니다. 201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버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 와이파이가 대한민국 수준이 아니었던 미국에서는 우버 앱 40MB를 다운로드하는데, 35분이 걸렸다고 한다. 긴 다운로드의 시간을 거쳐, 첫 사용을 위해 이것저것 설정해야 하는 것도 많았던 우버는 결코 편리해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일단 한번 사용하면, 멈출 수 없게 된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그때부터 우버는 택시 서비스가 아니라 게임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임이 왜 게임인가 생각해 보자. 게임은 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점수가 나오고 나의 위치를 알려준다. 공부나 일이 한 달에 한 번이나 시험이 있을 때만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과 다르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학교보다 학원에서 공부가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학원에서는 선생님이 매번 테스트를 보고 결과를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버가 그것을 해 준 것이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나의 이동 경로를 보여준다. 그리고 승객은 도착할 때까지 우버를 들여다보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우버가 선사하는 가장 놀라운 경험은 탑승한 후에 있다고 한다. 바로 비대면이라는 점이다. 택시 기사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목적지를 알고 오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구구절절한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외로운 인간이 희망하는 하나가 비대면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사회적으로 지쳐있는 현대인들은 선택적인 비대면을 원한다. 그리고 이 비대면이 코로나 펜데믹의 핵심이라고 한다. 이런 우버를 만든 사람은 게임 개발자들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지친 그들은, 주위의 많은 다른 이들도 택시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발견하고,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들의 배려하는 이타성에 실시간 피드백이라는 게임적 요소가 더해져 우버가 탄생한 것이다. 김경일 교수는, 이러한 이타성은 무책임하지 않고 책임질 줄 아는 것과 가깝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타적인 아이들은 게임도 조절하며 즐길 줄 알게 된다며, 게임에 대하여 혼란스러워할 학부모들에게 한 조각 안도를 건네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언젠가 꽃 피울 아이들을 위하여, 기다려 주기
배려하는 이타성에 창의성까지 함양해야 한다니,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을 학부모들을 위하여,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며 숨을 들이마신다. 바로 ‘기다릴 줄 아는 것’, 전문용어로 ‘즉시적인 만족의 지연’이 그것이다. ‘마시멜로 실험’ 이 연상된 학부모들이 있었던 것 같다. 오류로 판명되어 속이 후련했던 마시멜로 실험과 ‘기다릴 줄 아는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내심으로 참아내는 것과, 자연스럽게 측은지심으로 혹은 배려하여 기다리는 것은 다른 차원이 아닐까.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마시멜로 실험도 그 비슷한 유형’이라고 표현하는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즉시적 만족감의 지연 능력’은 이타성과 윤리성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어, 김경일 교수는 매우 명료한 액션 플랜을 알려준다. ‘엄마가 하던 일을 멈추지 마세요’라고. 해달라고 하기 전에 해주고, 필요하다고 하기 전에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이 가장 좋지 않습니다 라고.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하던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 내가 지금 이 책을 보고 있으니 기다리렴. 30분 후에 차려 줄게.’ 하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시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기다려 본 아이가 바로 남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대답을 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기꺼이 나의 시간을 내주어야 하고, 진지하게 집중하여 경청해야 하며, 깊게 사고하고 표현하는 모든 과정이 포함된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고, 질문을 받는 것도 멋지지만, 대답하는 것도 멋지다. 어느 쪽이든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이니, 이보다 더 멋진 일도 없구나 싶다. 그리고 하나 더, 아이가 그렇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부모도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려 주라고 덧붙인다. 어쩌면, 수많은 대한민국의 학부모를 만나온 그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생애주기, 생각을 바꿔야 할 때
김경일 교수가, 현재 우리의 기대수명이 어느 정도 되는지 질문을 던진다. 현재 40대 중후반을 기준으로 인간의 기대 수명이 무려 120세라고 한다. 혹, 행운의 여신이 비껴간다면, 135세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하며,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60세가 넘어갈 무렵에는 기대수명이 더 증가해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짧은 농담 후에 이어지는 본론, 그러니 예전처럼 20세 전후에 대학에 진학하여 30대에 취업을 완성하고, 40대에 가정이 안정되어 60대에 퇴직을 하는 생애주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북유럽에서는 대학 입학 평균 연령이 26세라고 한다. 대학 입학은 특성상 20세라는 고정값에서 우상향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생각하면, 평균이 26세라는 것은 실제로는 30세 이후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도 25세 이후에 다시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한 이들이다. 20세에 멋모르고 진학을 당한 아이들이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더 길어진 생애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영위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을 한 번만 가지도 않을 것이며, 입학하는 나이가 중요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20대, 30대, 40대… 우리의 아이들은 가는 꽃을 피울 것이고, 결코 늦은 때가 없다는 것을 믿고 기려주어야 한다고.
20대는 인생의 꽃을 피우기 힘들고, 그다지 바람직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피는 꽃이 각기 아름다운데, 내 아이가 꼭 봄꽃이어야 할 이유가 없음을 알면서도 종종 잊게 되는 것이 부모의 자리인가 싶다.
김경일 교수는, 우리 아이들이 130세 혹은 150세까지 살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20세 대학 진학’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해 한 번 고민해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에 대한 장기적인 시각이 생길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강연을 듣고 있는 부모들이 그렇게 자녀를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마무리하는 그의 세련되지만 단호한 경고가 왠지 마음에 든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생각하다.
기대 수명 이야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의 기대수명도 길지만 부모인 나의 기대수명 또한 길어졌다. 좋아하는 한 가지를 찾은 나는 확보된 시간에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엄마가 하던 일을 멈추지 마세요’라는 말속에, 기다림을 배우는 것도, 자신의 일에 열심인 부모를 보여주는 것도 담겨있으리라.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하며 ‘기다리렴’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표정을 아이도 닮아가리라 기대해 본다.
강연자인 김경일 교수도 고3, 중2의 딸을 둔 학부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두 시간의 강연 동안 게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다가오는 21세기,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나의 노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까지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비대면 강연으로 진행된 점도 주효했다. 적절한 익명성과 비대면이 부여한 용기로 끊임없이 피드백하며 강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두 시간의 강연 동안, 재미난 이야기보따리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데, 곰곰이 되짚어 보니, ‘게임, 자녀교육, 미래’라는 주제에서 벗어난 순간이 없다. 쉼 없이 웃으며 들었는데, 허튼 농담 하나 없는 속이 꽉 찬 시간이었다. 이런 치밀함이라니, 심리학자의 탁월한 언변과 그 이상의 학식과 내공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