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독일로 떠난다. 지척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는데 바다 건너간다 하니, 마음속 방 하나가 비어버렸다. 날씬한 너인데, 네가 있던 방은 생각보다 규모가 있었나 보다.
수 십 년 인연 속, 소중하지 않은 추억이 없는데, 하나에서 열까지 너의 마음 씀씀이 덕이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이야기를 풀어낼 때마다, 너는 묵묵히 들어주었지. 이해가 깊은 덕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인내하는 마음이 더 깊어 내 손을 잡아 주었구나 싶다. 나의 발걸음을 앞서지도 않았지만, 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 것도 아니다. 나의 걸음에 맞추어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힘든 줄도 모르고, 걸음을 바꾸기도 하며, 산 중턱 즈음 이르러 어제를 돌아보며 쑥스러워 마주 보고 웃기도 했다.
네가 나에게 소중한 것처럼, 나를 그리 대해 주어 고맙다. 견진성사도 받지 않은 나에게 딸의 대모를 권한 너였다. 준비가 안 되었다는 나에게, ‘견진 받고 대모 해 줘, 대모는 너야!‘라고 하며, 대안 없는 실천을 요구했다. 아무튼 그 계획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대모가 되기 위하여 새벽 미사도, 견진 교리도 빠짐없이 해냈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대모가 되었고, 딸 키우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마음으로만 방문하던 성당도 두 발로 방문하게 되었다. 여전히 가끔이기는 하지만.
일석삼조 이상은 되고도 남음이 있는 선택이었고 강요였다. 그렇게 강요해 준 네가 좋다. 아들만 있다고 투덜대지 말고, 딸 삼아 데리고 다녀 달라고, 이과 엄마와 문과 딸의 감성이 다르다며 대모를 부탁하던 너. 그 마음이 고맙다. 남자들만 득실득실해서 외롭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나도 느끼지 못 한 순간이 그대 눈에는 보였나 보다.
나에게 언덕 같은 그대가, 며칠 후 독일로 떠난다. 시간은 흐르고, 일상에 묻혀 어제와 같은 하루, 한 달, 일 년 그렇게 사 년이 지나겠지만, 그것이 내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영영 이별도 아닌데 많이 슬프다. 떠나는 그대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야 하나 고민한다. 이것도 저것도 영 탐탁지 않다.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서로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어 주려나.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따사롭고 뜨겁게 지내기를, 어느 날 생각이 나면, 바람결에 안부를 묻고 전하며, 공기처럼 언덕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그렇게 너의 안녕을 응원한다. 그리고 어제처럼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