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인 나를 위한 공부
논어 공부 1년에 즈음하여
논문 작성을 위한 공부를 할 것이라 했다. 학문하는 방법을 지도해 주신다고 했다. 진짜 공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교재는 정해주신다고 했다. 그것이 논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논어와 논문의 공통점은 음절 하나밖에 찾지 못하는 나에게 논어라니? 논어라니!
그렇게 시작된 논어 공부다. 아는 것이 없으니 마음은 편했다. 표음문자에 익숙했던 나의 눈이 오래간만에 표의문자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물 흐르듯 읽히는 훈민정음을 애정 하지만, 집중이 필요한 한자를 해석하는 재미도 좋았다. 아예 모르는 한자보다, 알 듯 말듯한 한자들이 전투력을 상승시켰다.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 좌절했지만, 집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새로움은 끝이 없었다. 쓰면서 공부하라 하시고, 소리 내어 읽으라 하시더니, 외우라 하셨다. 외울만하니, 거꾸로 외우라 하시고, 글을 쓰라고 하셨다. 그리고, 공개하여 읽게 하셨다. 학문 앞에 열린 마음이라 생각했는데, 쉽지 않은 걸음을 한 번 더 딛게 하신다. 눈앞에 펼쳐진 책은 수천 년 전의 고전이고, 방법 또한 익숙한데, 실천하려면 새롭게 다가왔다. 이토록 매혹적인 조합이라니. 2000년 넘도록 지속된 새로움이 놀라웠다. 수천 년의 지혜를 모르고 살아온 무지가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누리게 되어 다행이다.
논어는 시와 닮아, 독해와 해석을 넘어 아는 만큼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겨우 글자를 독해하고 해석에 땀을 닦기 바쁜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라며 하나하나 의미를 물어보시는 교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고 만다. 지식이 일천한 머릿속도 하얗고, 실천이 적은 손도 하얗다. 아직 말과 소리도 구분하지 못하는 입만 열심이다. 책으로 공부하는데 완성은 늘 책 밖이어야 했다. 그래서 만만치 않은 예습이고 복습이었다. 학이편을 8개월씩이나 붙잡고 있던 것이 아니라, 8개월 만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끈기와 눈높이로 이끌어 주신 덕이다.
함께 하지 않았다면 오지 못할 길이었다.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학문이 빛을 발해 갈망하여 만나게 된 것은 아니지만, 茶로 맺은 인연, 학문을 갈망하여 모인 우리는 有朋이고 自遠方來하였고 그리하여 不亦樂乎하였다. 1년 아니, 한 달이어도 어찌 힘들고 고민되던 때가 없었겠는가. 그때마다 마음 털어놓고 다독이고, 때로는 강요해주던 朋友가 있었기에 가능한 1년이었다. 뜻이 맞기가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것을 같이 해 냈으니 얼마나 소중하고 함께 즐거운지 모른다.
군자를 지향하는 논어인데, 논어 공부는 다양한 욕망을 촘촘하게 채워주었다. 지적 욕구와 소속감은 물론, 함께 공부하며 다독이니 서로 배워 애정 하며 존경하게 된다. 글쓰기는 예술을 사랑하는 茶人의 마음을 채워주고, 넉넉한 배려로 보장받은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으니 안전하여 평온하다. 지금은 온라인 진행으로 발걸음 하지 못하지만, 가지 않아도 가고 있는 듯한, 믿는 언덕이 존재한다는 것은 큰 힘이다. 그곳에서 다과라는 이름으로 풍요로운 식탁, 아니 책상에서 강력한 기본 욕구를 채웠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곧 돌아갈, 그리운 시간이다. 이 모두가 자아실현을 위한 걸음이 되어주니, 논어 공부는 생리적인 욕구를 시작으로, 안정감, 소속감, 존경과 인지 그리고 심미 추구와 자아실현에 이르는 Maslow의 인간욕구 7단계를 채워주는 시간이 되었다. 세속적인 나에게 안성맞춤인 공부가 논어일 줄이야.
10년씩 10번은 더 지속되기를 바라는 소중한 시간이지만, 계획도 포부도 함부로 말하기 두렵다. 아끼는 한 가지, 지극히 귀하여 똥강아지라 부르는 마음이 이러하려나.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내일도 알 수 없으니, 한계를 두지 않고 오늘 정진하련다. 상황도 마음도 흔들릴 때, 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어제처럼 오늘처럼 계속하련다. 돌부리도 진흙 길도 지혜롭게 건너 멈추지 않기를, 처음 1년을 추억하는 빛나는 내일을 조심스럽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