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다회(茶會)

동백역 하얀집의 과자, 그리고 우치다 선생님의 행다

by Kate

오늘은 기다리던 다회에 참석하는 날이다. 우치다 선생님의 행다를 보는 것은 세 번째이지만, 애정 하는 동백역 하얀집과의 협업으로는 처음이다. 그녀의 요리를 볼 수 없음은 아쉽지만, 하얀집의 그녀와 어떻게 차회를 풀어나갈지 기대된다. 몇 주 전 예약을 하면서, 엄마를 모시고 갈지 고민했다. 서울에서 용인까지 간다고 하면 과연 가실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구름 때문에 아니 가실 수도 있고, 구름 덕분에 걸음 하실 수도 있는 나의 그녀에게 수백 가지 이유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담백하게 “같이 가세요.” 하리라 마음먹고, 예약 버튼을 눌렀다.


추석 즈음 열리는 덕을 톡톡히 본다. 추석 덕에 매번 실패하던 예약에 성공했고, 한 시간 가량 걸리던 길도 30분 만에 도착했다. 익숙한 하얀 공간, 눈으로 보기만 했던 원목 테이블에 앉아본다. 한쪽에 소나무 분재가 보인다. 분재를 아름답다 생각한 기억은 없는데, 그 소나무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워 눈길이 간다. 짙은 회색과 두터운 하얀빛 몸통에 너울거리듯 기품이 흐른다. 맞은편에는 긴 꽃가지가 꽂혀있는 작은 화병이 놓여있다. 대칭과 비대칭의 조화 속 배려가 느껴진다. 4인의 객이 어디에 자리하든, 장식이 멀어 서운하지도, 장식이 가까워 불편하지도 않다. 테이블 중앙에 놓인 작은 물병과 그보다 더 작은 문향배를 닮은 물 잔도 마음에 든다. 오늘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고 몸을 낮추고 목마름을 달래주려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다소곳이 접혀있는 하얀 종이를 펼쳐본다. 오늘 다회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기대하게 해 주는 차회지는 기분 좋은 첫인사다. 와인 잔을 닮은 작은 유리잔에 웰컴 드링크가 나온다. 루이보스의 옅은 붉은 기운이 ‘이제 곧 가을, 그러나 아직’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엘더플라워와 페퍼민트가 상쾌하다. 우치다 선생님의 내공과 계절 담은 섬세함이 느껴진다. 어지간한 블렌딩엔 시큰둥한 엄마도 마음에 쏙 들어하시는 표정이다.


오늘 다회의 주제는 발효, 다양한 일본 전통 누룩으로 계절의 과자와 그와 합을 맞춘 차를 선보인다. 차와 다과의 조화는 물론이고, 기물 하나하나 긴 고민 끝에 간결한 선택으로 완성된다. 다과에 맞추어 매번 바뀌는 기물들은 기막히게 적절하다. 담음새 또한 일품이다.


검은색 옻칠을 한 종이 접시 위에 첫 번째 과자를 담아낸다. 노란 단호박 퓌레를 발효장으로 간하여 만든 쌀 다과와 국화 모양으로 찍은 일본의 설탕과자 와산봉이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노란 소국 꽃잎들이 검은 화지 위에 단정하게 흐드러져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꽃잎을 들어 물 잔에 띄워본다. 그녀의 정성 하나 손길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율란과 비슷한 일본의 쿠리킨톤을 요리처럼 풀어낸 두 번째 다과도 멋스럽다. 7년 숙성된 검은 미림은 발사믹처럼 깊고 달다. 입체적인 맛과 향인데 은은하여 도드라지지 않는다. 즐겁게 숟가락을 움직이다 보면, 달다는 느낌 없이 맛있게 깨끗해진 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식혜의 밥풀을 곱게 으깬 듯, 누룩을 체에 내려 만든 아마자케는 담백한 요구르트 같다. 무화과와 붉은 레드커런트 장식 옆에 작은 시소 꽃들이 보인다. 꽃봉오리와 씨방을 분리하였는데,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씨방의 식감과 향에 웃음이 난다. 세상 야무진 눈매와 지적인 콧날을 가진 그녀의 모습은 이유가 있었다. 화룡점정은 함께 나온 누룩 조미료로 간을 한 녹찻잎 무침이다. 똑 떨어지는 한 방울까지 세밀하게 나누어 간을 한 듯 절묘하다. 이 순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 생각이 닿을 때, 다과가 마무리되었다.


다과와 함께한 카부세차의 향미는 옥로보다 깊었고, 부드러운 호우지차는 세련된 안녕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우치다 선생님의 말차 행다는 이번 다회의 중심축 하나가 여기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호흡은 편안하고 손길에 막힘이 없다. 참으로 겸손한 행다이다. 약식 행다이지만 가볍지 않게, 더 이상 뺄 것이 없이 꽉 차있다. 형식의 간결함이 동작에 무게를 더한다. 가벼운 것은 무겁게 무거운 것은 가볍게 다루는 그녀의 손길에 균형이 있다. 보는 내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마음이 밝아진다. 그렇게 받아 든 우스차 한 잔은 달고 또 달다.


차회가 진행되는 매 순간이 행복이다. 객으로 왔으나, 차회에 자리하는 순간 내 자리에서 나는 주인이 된다. 두 주인장의 그러한 배려와, 세심함을 넘어선 치밀한 마음 씀씀이에 객으로 주인으로 행복하다. 나의 감동이 또한 그녀들에게는 주인 된 행복이 되어 주었으리라. 함께 한 엄마의 얼굴도 환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저 다과인데, 주말 길게 품을 낼만한 것인지, 그래도 딸의 호의이니 한 번은 받아주리라 하여 걸음 한 것인데,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고 하신다. 다음에 행여 나 혼자 예약을 하면 그보다 더 오래도록 서운해하실 것 같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의 바람이 싱그럽다. 며칠 지나 문득, 마음이 가벼워져 있음을 깨닫는다. 수개월간 어깨를 짓누르던 무언가가 걷힌 것 같다. 상황은 터럭만큼도 변한 것이 없는데, 가늠하기 힘들던 무거움이 깃털로 사라졌다. 언제였던 걸까. 그녀의 마음 담긴 꽃잎 하나에 내 손길 더하여 물 잔에 띄운 순간부터였는지, 흐르는 강물 같은 그녀의 행다를 두 손으로 받아든 다음부터 였는지, 엄마의 얼굴 가득 피어오른 미소 덕분인지 알 수 없으나 그저 므흣하다. 마음 깊이 마신 찻자리의 여운이 길다. 담백한 찻물이 남아 있는 동안 몸도 마음도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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