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의미
구피야, 부러워: 자유의 의미
다들 어항 속 구피를 보며 부러워한다.
우리 딸은 구피는 학교 숙제 안 하니까 부럽고,
우리 아들은 구피는 목욕 안 해도 돼서 부럽고,
우리 아빠는 구피는 회사 안 가서 부럽고,
나는 구피가 집안일 안 하고 노니까 부럽고.
우리 딸은 구피가 밥 먹는 게 지겹지 않을까 걱정이고,
우리 아들은 구피가 엄마한테 잡아먹히지 않을까 걱정이고.
우리 아빠는 구피 어항이 더러워질까 걱정이고, 어항청소가 힘드니까.
나는 구피가 심심할까 걱정이다.
한참을 구피를 피우다 보니, 구피가 뭘 좋아하는지, 구피가 뭐하고 노는지, 구피가 얼마나 잘 크는지 눈에 훤하다. 아주 잘 안다. 아마도. 아니면 말고.
구피는 구피 밥(한 종류)만 잘 먹고, 가끔 비타민도 주지만.
구피는 물놀이를 좋아하고, 물에 있으니까.
구피는 쑥쑥 크고. 먹고 노는 게 전부니까?
내가 훤히 안다고 하는 것은 착각일 수도 있겠네.
구피랑 대화를 나눠보지는 않았으니.
구피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늘 지켜본다는 것을. 모르나?
구피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구피 밥을 잘 줄 것이란 사실을.
구피는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새끼를 10-20마리씩 낳는다. 잘하면 한 생애에 2000마리를 낳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 우리랑 함께 지내는 구피만 벌써 3세대를 거친 것이다. 지난 한 해동안 구피 새끼도 많이 받고, 여러 구피들을 무지개다리를 건너 보냈다. (우리 딸이 알려준 표현이다). 하도 열심히 관찰해보니, 한 마리 한 마리 다 개성이 넘친다는 사실은 안다. 물놀이 성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거 같다. 참 구피까지 파악하려니 머리가 아프지만.
문뜩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종종. 아니 늘.
작은 틀 안에 갇혀있는 구피는 어떤 마음일까?
아무 생각 없겠지만, 만약 우리가 좁은 틀 안에 갇혀있다면 어떨까?
무한으로 먹이가 제공되고, 할 일도 없고(물론 뭔가는 있겠지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훤히 다 보이는 유리관에 내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채, 나에게 반복되고, 변화가 없는 일상이 주어진다면.
요즘 읽고 있는 조지 오웰의 [1984]의 세상이 갑자기 스쳐 지나간다.
감시받는 사회에서의 억제된 감정. 개인의 자유는 없는 세상.
“빅브라더께서 당신을 지켜보고 계신다.”
자유라는 단어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구피에게 자유를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