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무엇이 들었을 지, 무엇을 맞추게될 지 모를 총이라도
4학년이라는 이름을 달고 쓴 첫 시.
매사 바쁘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소홀히했더니 막상 쓰려는데 어째 생각해 둔 이야기거리도 없었다.
마음먹기만을 한참, 커서가 홀로 깜빡이는 노트북 앞에 몸은 움직임 없이 오래도록 묶여 있기만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저히 못 쓰겠다 징징거리는 한 편으로 머릿 속은 열심히 단어와 문장을 고르고 있었는데. 도저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괴로웠다. 글 쓰는 게 이토록 막연하게 괴롭다니.
그럼 그냥 지금 이 상태를 써보자. 그렇게 생각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지만, 가장 부담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지금의 이것. 그리고 나.
얼마 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프닌>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눈사태가 마을을 덮치기 직전에 멈춘다면 그건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지금 나를 덮치는 불안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피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위로하는 것이 아닌 '다그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다그침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위로가 되었다.
스스로의 모든 것이 특별한 줄만, 특별할 줄만 알았던 나. 그러나 클수록 세상에 천재는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사이에서 나는 점점 평범해져만 갔다. 또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것은 나를 계속해서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저그런 글을 쓰는 평범한 사람일까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블라디미르의 문장을 읽었을 때 안톤 체홉이 했던 말이 떠올랐었다.
"아무도 쏠 생각이 없다면 총탄이 든 총을 무대에 놓아 두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하루키가 소설에 가져다 쓰기도 했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오면 그건 발사되어야만 한다."고.
그들은 내러티브에서의 필연적인 전개에 대해 말하는 것이겠지만, 나에게 '글쓰기'는 어쩌면 내가 삶이라는 서사를 사는데 있어 맞딱드린 필연적인 전개는 아닐까 생각해보게 됐다.
반드시 손에 들고 방아쇠를 당겨보아야만 하는 꿈 말이다.
그렇다면 이 불안들 역시 어쩌면 도덕적으로나 필연적으로 시어가 되어야했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