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나, 파우스트의 비웃음
AM 4:32
밤낮이 완전히 바뀌는 주말이지만, 평일은 주말보다 3일 더 많다. 따라서 깨어있긴 하지만 몸을 지배하는 평일의 리듬은 나를 자꾸만 자빠뜨리려고 한다. 그러나 이 고요한 시간은 의식도, 무의식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럼 이 방황의 틈새로 문득 덮쳐오는 생각과 기억들은 병을 일으킨다. 예를 들면 심한 두통이나 갈비뼈 통증으로 인한 호흡곤란.
그럼 그때부터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 약해지면 평소에 지나쳤던 것들을 자세히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약해지면 이것 저것 슬퍼할 일이 많아진다.
이것 저것 찾아내어 더 슬퍼진다.
원태연, <미련의 결과>
그렇게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눈물도 생각도 다 말라갈 때 쯤 꿈을 꾼다. 그 속에서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슬픔과 고뇌를 죄다 끌어안고 파우스트를 만나게 된다. 그는 외친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와 계약하며 모든 쾌락과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대신, 단 한 순간이라도 저 말을 내 뱉는 즉시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라 말했다. 쾌락을 주는 대신 그 벅참을 인정하는 순간 지옥으로 데려 간다는 것. 참으로 악마다운 계약이다.
<파우스트>에는 두 가지의 결말이 존재한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괴테의 파우스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원작인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파우스트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희극이고, 말로우의 파우스트는 비극이다. 정반대의 결말인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달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인간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결국 파우스트이며, 동시에 파우스트는 인간들이 지닌 욕망의 유기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구원을 받게 되는 결말을 가진 괴테의 파우스트가 더 마음에 든다. 욕망하는 것이 무엇이든 또는 후회하든, 만족하든 구원받고 싶다.
파우스트가 나를 보고 비웃은 것은 아마 미련스러운 욕망, 갈등으로 인한 슬픔과 욕심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일 수도, 그것을 내 하고싶은대로 해도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일 수도, 나는 그처럼 구원받을 수 없는데도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가소로워서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