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by Le Penseur

투명한 솜털이 볕 기운에 빛나던
그런 날이 있었다
붉은 꽃을 피워내노라면
잔뜩 벼리고 날을 좀 더 세우는
그런 날이 있었다, 도도하고 예뻤지

성숙한 뿌리를 맞이하고도
붉은 꽃을 토해내어 섧기 그지없던
그런 날이 있었다
온음 사이의 반음을 짚어내는 것만큼이나
정교한 일의 책임을 혼자 떠안아야했던
그런 날이 있었다

가시는 제가 저인 게 이상해
이제는 이름이 된 그것을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가…시…….
제가 이 삶의 주인공이라면 이럴 리가 없는데
그런 말들은 안으로 삼키면서

참았던 서러움 여러 번
눈 밑으로 뚝뚝 떨어지고
마침내 열매가 제 존재를 드러내고
그 열매를 다시 튼튼한 뿌리로 키워내려
부단히 노력했던 그런 날이 있었다

그런 날들을 지나, 이제 꽃은 피지 않는다




*가시: 순우리말로 안해(아내), 계집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