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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쌤 Mar 03. 2023

카드 결제는 현금영수증 안돼요

현금영수증과 관련된 일화

이번 이야기는 아마도 내 학원 근무 생활 중 제일 답답하고 환장할 에피소드를 꼽으라고 하면 원픽으로 꼽을 만한 사건 아닐까 싶다.


첫 근무지였던 학원에서 근무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학원 행정업무까지 맡아야 했다. 원래 행정업무만 담당했던 선생님이 따로 있었는데  그분이 본사 R&D로 근무지 이동을 통보받고 후임으로 추천한 사람이 나였다. 그 당시 내가 추천받기도 했지만 원장님도 내가 해줬으면 하고 권유를 하시길래 생각할 시간을 일주일 달라고 했다.

근무한 지 두 달 만에 월급인상의 조건과 더불어 바쁠 때는 업무용 컴퓨터와 함께 독방을 차지하며 일할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선생님에 불과한 내가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일주일까지 갈 필요도 없었고 단 이틀 만에 승낙을 한 후 근로계약서를 다시 썼다.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학원에서 던져놓은 달콤한 미끼를 문 것이었다.


행정 업무가 어마어마하게 복잡하고 바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매월 원비를 미납하는 학부모에게 지속적으로 문자를 보내야 했고 문자로도 해결이 안 되면 전화도 해야 했는데 이런 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세금계산서나 영수증 없이 법인 카드를 자꾸 쓰는 원장님 때문에 본사에서는 나에게 원장님도 영수증 없이 돈 쓰면 카드 주지 말라고 압박을 해오고 매달 월말에 본사에 제출해야 할 서류 작업과 세금계산서 첨부는 학원 일과 별개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덤으로 와이프도 아닌 내가 매번 원장님에게 영수증이나 새금계산서 없이 카드 쓰지 말라는 잔소리까지 시전 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학부모가 남매의 학원비를 결제한 후 현금영수증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셨다.

학원비를 현금으로 결제하고 현금영수증을 요청했으면 당연히 해드릴 수 있으니 뭐가 문제겠는가!

카드로 원비를 결제한 후 현금영수증을 해달라고 떼를 쓰니 바빠죽겠는데 정말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지만 꾹 참고 설명을 해드렸다.

"어머니, 현금영수증은 어머님께서 원비를 현금으로 결제해 주셔야 발급이 가능해요. 카드 결제를 하신 후 현금영수증은 발급이 불가능합니다. 현금영수증을 원하시면 카드 취소하신 후 원비를 현금으로 납부하시면 발급해 드릴게요."

"선생님 아이 아빠가 결제하고 현금영수증 받아오라고 했어요. 시킨 대로 안 하면 저 집에 가서 혼나요. 그러니까 해주세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이성을 잃고 학부모와 싸울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아버님은 우리 학원 바로 옆에 위치한 농협의 임원이었다. 은행 임원이 와이프에게 학원비를 카드로 결제하고 현금영수증을 받아오라고 시킬 일이 없다는 것을 나 알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그렇게 시키셨을 리가 없을 텐데요. 아마도 두 분 의사소통 과정에서 착오가 있으셨던 것 같으니 아버님과 통화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 잘 모르니까 선생님이 통화해 보시면 안 될까요?"

그래서 결국 내가 전화를 드린 후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침에 출근 전에 와이프에게 시킨 게 있는데 잘 못 알아듣고 학원 가서 현금영수증 해달라고 한 것 같은데 아이 엄마 좀 바꿔주시겠어요?"

"어머님 전화 좀 받아보세요"

전화를 넘겨준 후 그 아버지가 야단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 나에게까지 다 들렸다.

"제정신이야? 아니 왜 학원 가서 카드결제를 하고 현금영수증을 해달라고 해서 바빠죽겠는데 이런 전화까지 받게 하는 거야? 왜 애 학원 가서 날 개망신 시키는 거야? 바쁘니까 나머지는 집에 가서 얘기해!"

통화를 끊고 난 후 어머님이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를 하시는데 아버님과의 통화내용을 옆에서 다 들었으니 내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일이 다 해결되고 난 후 그 엄마가 학원밖을 나가자마자 선생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 실력으로 어떻게 이대를 갔데? 음악 전공이라더니 진짜 공부 안 했나? 어떻게 카드 결제를 하고 현금영수을 해달라고 하지? 아무리 사회생활 안 하고 집에서 살림만 한다고 해도 이 정도는 너무 모르는 거 아닌가?'


그렇다. 다들 이상하다며 수군거렸던 이유는 그 어머님의 학벌에 비해 평소 아는 게 너무 없는 탓이었다. 평상시에도 이대를 어떻게 들어갔을까? 음악전공했다니까 돈 써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며 다른 선생님들이 무척 수군거렸는데 이 사건이 바로 결정타를 날린 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학원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이 에피소드만큼 환장할 것 같은 일은 아직까지없다. 그 당시 미혼이었던 내가 이런 상황을 겪은 후 여자가 결혼해서 너무 남편그늘에만 사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집에서 아이 키우고 살림해도 너무 아무것도 모르면 주변사람이나 남편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남자나 여자의 성별문제를 떠나서 사람이 너무 아무것도 모르면 자존감도 떨어지고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없기에 자신감도 결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때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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