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우리 학원의 모든 학부모를 통틀어 제일 황당했던, 아니 앞으로도 못 만나볼 그런 학부모가 있었다.
"언니 도서관에 아무도 없네. 이 책 우리 아이 대신에 내가 대출신청 좀 하려고 하는데 처리해 줄 수 있나?"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언니?, 지금 나보고 이 엄마가 언니라고 한 건가?'
얼떨떨하고 황당하기는 했지만 원하는 대로 해드렸다.
해당 학부모가 나가고 내가 다른 선생님에게 물었다.
"OO원장님 사모님이 혹시 선생님도 언니라고 불러요?"
"네. 그 아줌마는 여기가 자기네 학원인 줄 아나 봐요. 맨날 언니라고 부르는데 기분 나빠 죽겠다니까요."
OO구에서 프랜차이즈를 하고 있던 OO 원장님 사모님인데 집이 우리 학원 근처이고 아이도 학교 끝나고 왔다 갔다 하기 편하도록 아빠가 운영하는 학원이 아닌 우리 학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모님이 꼭 우리 학원에 올 때마다 선생님들을 언니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황당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애를 자기네 학원으로 데려가던가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학원으로 오면 돈 내고 다녀야 하는데 왜 여기 와서 우리한테 '언니'라고 부르면서 사람 속을 긁어놓는지 가뜩이나 힘든데 저 아줌마까지 사람 피곤하게 한다니까요."
그 당시 내가 일했던 직영점은 영어도서관의 크기가 굉장히 커서 유치부 아이들은 체육수업을 하는 강당 겸 도서관으로 사용했고, 컴퓨터실이 따로 있어서 모든 학생들의 시간표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컴퓨터실에서 진행하는 수업이 별도로 시간표에 편성되어 있었다.
선생님들 사이의 추측으로는 굳이 공짜로 공부할 수 있는 아빠의 학원으로 가지 않고 우리 지점으로 온 이유는 우리 지점이 크기가 압도적으로 크고 시설이 잘 되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들끼리 이야기가 오고 가기는 했었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OO원장 사모님이기 이전에 일단은 우리 학원에 다니는 학생의 학부모이기에 선생님들 또한 학부모로서 정중하게 대했는데 문제는 이 엄마가 마치 자기 학원인양 와서 거들먹거리며, 선생님들을 언니라고 부르면서 하대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가 식당도 아니고 아니 왜 우리한테 언니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어느 날은 선생님 중 한 분이 이런 불만을 나에게 넌지시 이야기했었다.
"뭐, 어쩌겠어요. 내 남편이 원장이니까 여기서도 대우해 달라는 거 아닐까요? 더한 학부모도 있는데 자기 하고 싶은데로 내버려 둬야지 학부모한테 어떻게 따지고 들겠어요."
우리끼리 이렇게 이야기하고 매번 학원에 와서 선생님들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쓸 때마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학부모가 한 선생님을 언니라고 부르면서 강의실 앞 복도에서 무언가 물어보고 있었는데 부원장님께서 지나가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후 나에게 물어보셨다.
"선생님, 저분이 방금 우리 선생님한테 언니라고 한 것 같은데 맞아요?"
"네. OO원장님 사모님이신데 우리 학원 선생님들을 꼭 언니라고 부르더라고요"
"네??? 언니라고 부른다고요? 아니 왜요?"
"글쎄요..." 내가 말끝을 흐렸다.
"OO원장 사모님이 아니라 대표원장이어도 자기 아들이 다니는 학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을 언니라고 부르는 게 말이되요?"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 부원장입니다. 죄송하지만 어머님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저와 상담실로 가시겠어요?"
부원장님과 함께 상담실에 들어가고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상담실에서 나오신 어머님께서는 그 이후 학원의 선생님들에게 '언니'라는 호칭 대신'선생님'으로 바꿔서 불렀다.
그리고 회의시간에 원장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 학원 학부모가 누가 되었던 난 신경 안 씁니다. 학부모가 OO대 영문과 교수이던, OO지점 사모님이던 나에게는 단지 학부모일 뿐입니다. 우리 선생님들 모두 유학파에 외국에서 공부할 만큼 하고 오신 분들인데 무례하게 구는 학부모 앞에서는 무시당하지 말고 당당하게 일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발생하면 원장 권한으로 그런 학부모의 아이는 학원에서 더 이상 받지 않겠습니다."
그 시점에 OO대 영문과 교수였던 한 학부모가 학원에 와서 아주 무례하게 구는 바람에 원장님과 원장실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고, 부원장님이 선생님들을 '언니'라고 부르던 학부모와는 따로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하신 후 원장님께 전달을 했던 모양이었다.
돌이켜 보면 직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마다 항상 원장님과 부원장님이 마치 영웅처럼 나타나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었다.
그 이후로 무례했던 학부모 두 분은 학원에서 선생님들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고 현재까지 수많은학부모를 만나봤지만 '언니'라고 부르는 분은 두 번도 못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