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오밍 황야에 우뚝 선 데블스 타워 Devil's Tower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 90번 도로를 타고 달렸다. 어려서부터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데 생애를 바친 26대 대통령 씨어도어 루스벨트는 이 신기하고 웅장한 모습을 190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오래도록 그 모습 그대로 간직되기를 염원했다. '데블스 타워'는 우리말로 옮기면 "악마의 탑"이라는 뜻이다. 데블스 타워의 역사는 약 8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용암이 분출하여 식으면서 화산암이 되고 세월이 흘러 침식하고 암봉이 외부로 노출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된 것이다. 867 피트, 264미터의 웅장한 위상을 뽐내는 데블스 타워가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자 우리는 모두 와~ 하고 감탄사를 질렀다.
와이오밍 여행길은 웅장한 자연경관도 좋았지만 인간과 더불어 사는 동물들과 마주치는 일이 또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 전날 숲 속을 지날 땐 커다란 사슴 몇몇이 자주 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황소보다 큰 버펄로와 눈이 딱 마주쳤을 때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버펄로는 공격적이라 차도 사람도 들이받을 수도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처음 들어보는 프레리 도그 prairie dog이라는 동물들이 많았는데 언뜻 보면 다람쥐 같기도 하고 두더지 같기도 한 것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딸아이 슬리퍼에 달린 플라스틱 방울을 과일로 착각한 듯 모두들 일제히 신발을 향해 돌격~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떠날 줄을 모르고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차를 타고 끝도 없는 평원을 지나오자 애들 입에서는 하나 둘 배고프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피자헛, 맥도날드, 애플비같은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곳들은 많았지만, 이 동네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것을 음식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창밖을 바라보며 달리고 또 달렸다. 동네 어귀의 한적한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면서 인상좋은 직원에게 이 동네에서 갈만한 음식점을 소개해 줄 수 있느야고 물었더니 단번에 말해주는 집이 있었다. 찾아가보니 대로변에 있긴 하지만 아주 자그마한 시골 다이너였는데 주차장엔 차들이 한가득이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 가자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은 물론이고 젊은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우리를 향했다. 이 시골 동네 작은 다이너에선 동양인을 구경하는 것이 쉽지 않구나 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구 뭘 이렇게까지 반갑게 환영을 해주실까?" 라고 하면서 웃으며 인사를 하고 우리는 직원이 권해 주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이 식당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주물로 만든 양념 정리대가 맨 먼저 나의 눈길을 끌었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한 아가씨에게 맛있는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앵거스 비프로 패티를 만들어 그래비 소스를 곁들인 햄버거 스테이크가 젤 맛있다고 하길래 그걸 주문했다. 조금전 지나 오면서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던 소들이 생각나서 몹시 미안했다. 음식들 모두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는데 특히 도톰한 어니언링이 참 특이하고 맛있었다. 또 아가씨는 와이오밍 주가 펩시콜라의 본 고장이라며 그 곳에서 30분 정도만 가면 펩시 공장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왠지 신선할것 같아 소다를 좋아하지 않지만 커피 대신 펩시도 함께 시켰다. 앳되보이는 그 아가씨는 이 고장 역사와 볼거리등 이런 저런 설명도 잘해주고 친절해서 팁을 두둑히 두고 나왔다.
와이오밍 여행에서 특히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곳은 와이오밍 주의 핫스프링스 내셔널 팍이었다. 이 조그만 마을에는 8,000 갤런 이상의 물이 화씨 135도를 유지하며 24시간마다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일 년 내내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주정부에서는 공공 온천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관광객들도 무료로 20분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 온천 성분이 치료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해서 각지에서 여행객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우리가 간 시간은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한적하다 못해 고즈넉하기까지 했다. 이 마을에는 온천장이 딸린 두 개의 물놀이공원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두 곳 중에서 규모가 더 큰 Thermopolis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하고 여장을 풀었다. 물놀이공원에서 아이처럼 신나게 하루를 보내면서 그동안 쌓인 여독을 말끔히 씻어냈다.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진다.
사실 이 온천공원을 찾아오는 동안 몇 번씩이나 "세계에서 가장 큰 미네랄 온천"이라는 싸인이 있었다. 내심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했는데 이곳을 제대로 둘러보고 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정해진 온천 외에 공원 전체, 아니 마을 전체 곳곳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물이 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지근한 물도 있었고 손을 대보고 깜짝 놀라 뺄 만큼 뜨거운 물도 있었다. 무엇보다 감탄한 것은 물이 너무나 투명하고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간직한 곳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온천 공원이 있었다면 다들 몰려와서 발을 담그려고 북새통을 이뤄 훼손되지 않았을까.
온천을 다 둘러보고 사파리처럼 차를 타고 이동하며 Bison 떼를 구경하는 공원으로 이동했다. 신기한 구경에 몇 바퀴를 돌고도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를 연발했다. 거대한 bison 떼들이 갑작스레 우리 차를 향해 돌진해 오지 않을까 두려움에 구경하는 내내긴장해야 했다. 대자연속의 이런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너무나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대한 땅덩어리의 나라, 미국이 부럽다는 생각을 또 다시 했다. 이 멋진 온천장에 머무는 동안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먼 훗날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이 한적하고 아담한 마을한 곳에 작은 온천장을 열어 변 어떨까.. 옐로우스톤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여생을 마쳐도 좋겠다는 황당한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이곳은 자연 그대로 이 모습 이대로 영원히 간직되어야 할 이곳 사람들의 삶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