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칸소에 가면 꼭 가보리라 맘먹었던 곳은 핫스프링스 내셔널 팍 HotSprings National Park이었다. 1700년대 후반부터 인디언들이 사용했다는 이 온천은 연중 화씨 143도/섭씨 62도의 온도를 유지하며 하루 700,000 갤론의 물을 뿜어 내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도시 이름이 '온천 Hot Springs' 인 이곳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자란 곳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식 목욕탕인 배스하우스들이 줄지어 있는 길 Bathhouse Row 에는 그 당시의 온천욕의 전성기를 짐작할 수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굳게 문을 닫고 있거나 기프트샵이나 비지터센터, 박물관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고, 지금은 벅스탭 Buckstaff와 쿠아포우 Quapaw 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벅스탭 배스하우스Buckstaff Bathhouse는 전통 유럽 스파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며 꾸준히 영업을 하고 있는 유일한 곳으로 마침 올해로 100주년을 맞고 있었다. 워낙이 온천을 좋아하기에 전통 유럽식 스파는 어떤지 경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이 불볕더위에 무슨 온천이냐며 다들 손사래를 젓는다. 결국 나만 들어가고 하고 나머지 셋은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타운 구경을 하기로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이 full Swedish body massage 까지 포함된 $64짜리 스파를 권한다. 하지만 가족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난 한 시간 짜리 기본 스파만 하겠다고 하고 $30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한 시간짜리 스파에는 월풀스파 whirlpool bath, 좌욕 sitz bath, 증기 캐비닛 vapor cabinet, 핫팩 hot packs, 바늘 샤워 needle shower 가 포함되어 있었다.
입구에서 티켓을 끊자마자 창구 바로 옆 엔틱 스타일의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타고 온 직원이 나를 에스코트해서 2층으로 데려고 갔다. 2층으로 올라가니 영화나 엔틱 박물관에서나 본 듯한 감동적인 장면들이 펼쳐졌다. 마치 100년 전 유럽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쉐비쉭 스타일 카우치와 화장대, 거울과 바람에 나부끼는 시폰 소재의 화이트 커튼과 앉으면 푹 꺼질 듯한 폭신한 러그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직원 명찰을 단 아가씨가 나를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라고 하더니 옷을 다 벗으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미국 대중 스파는 수영복을 입는 게 보통 상식인지라 살짝 당황했다. 정말 그래야 하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하늘하늘 커튼 같은 시폰 천을 갖고 와 뒤로 돌라고 하더니 로마 여신처럼 온몸을 감싸 주었다.
역시 백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시설은 오래된 느낌은 있었지만 엔틱 스타일 일인용 욕조나 신기하게 생긴 일인용 스팀 캐비닛 등이 굉장히 신선한 장면들이었다. 아가씨가 일일이 나를 따라다니며 다 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그저 다음 코스로 이동할 때 뒤돌아 팔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샤워할 때도 수도꼭지조차 만질 필요 없이 들어가 있으면 벽 전체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누군가가 나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약간의 불편한 긴장감도 없지 않았지만 특별한 시중을 받고 있다는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스웨디시 마사지를 꼭 받아 보리라 맘먹었다.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은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마을 구경에 나섰다. 이곳 주민들은 타운 곳곳에서 나오는 미네랄워터를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커다란 생수통에 물을 받고 있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빈 생수통에 물을 한가득 받아 신줏단지 모시듯 간직하며 며칠을 마셨다. 클린턴 대통령 박물관이 있는 리틀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