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여장을 푼 다음 요기를 하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나섰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한참을 돌아다녔다.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구글링을 해보면 좋은 레스토랑이 많겠지만 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음식맛보다는 분위기 좋은 집을 고르기로 했다. 물론 나의 생각이었다. 그 중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며 행복한 웃음을 웃는 이들이 많은 곳인 보카 바 비스트로 BOCA BAR BISTRO 라는 곳에서 멈춰섰다. "여기가 좋겠다. 들어가자" 라고 말하고는 앞장섰다. 실내가 꽤 넓은 곳이었는데도 이십여분 기다려서야 들어갔다. 은은한 조명 아래 테이블마다 작은 양초가 서너개 타고있고, 감미로운 재즈가 행복하게 해주었다.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와 검은색 유니폼에 하얀 에이프런을 메고 양손에 음식을 들고 잰걸음으로 테이블 사이를 누비는 이들의 표정이 밝은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충분히 즐거웠다. 자리를 잡고 사라토가 특산품인 사라토가 맥주를 시켰다. 해산물 전문집인 곳이라 한꺼번에 각종 해물을 맛볼 수 있는 쉐프 추천 메뉴를 주문했다. 삼십분 가량 기다려야한다고 해서 좋다고 말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맥주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올리브도 씹으며 끝도 없이 수다를 떨었다. 역시 맛있었다. 너무 배가 불러 다 먹지는 못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화려한 다운타운을 거닐다가 밤늦게 돌아와서는 샤워를 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꽤나 긴 하루였다.
이튿날 새벽, 책을 가지고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호텔방에서는 작은 램프라도 하나 켜지면 가족들이 잠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난 이 새벽시간이 참 좋다. 다들 잠든 새벽에 로비로 나오면 으례 갓 내린 은은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한다. 커피를 들고 창가자리에 앉으니 그제서야 봄비가 오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이 트는 새벽무렵, 비오는 창가자리, 향기로운 커피와 뒷이야기가 궁금한 책 한 권.. 더 이상 행복할 수는 없었다.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나왔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사라토가 스프링스 다운타운을 걷기로 했다. 다행히 오락가락 하는 비여서 우산은 필요없었다. 길가에 주차를 하는 것은 쉽지가 않지만, 꽤 널찍한 무료 공영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그곳에 주차를 했다. 가장 멋진 메인스트릿으로 뽑혔다는 사인이 바뒤에 새겨져있었다. 미국에는 그런 상도 있었구나. 사라토가 마켈플리에스라고 적힌 곳이 있었다. 살짝 들여다보니 뉴욕 첼시마켓 분위기도 나고, 씨애틀 마켓플레이스 같기도 하고, 네브라스카 오마하에 있는 미로같던 지하 마켓플레이스 분위기도 나는 곳으로 들어갔다. 역시 이곳에도 아담하고 분위기 좋은 갤러리가 있었다.
다운타운 구경을 마치고 차를 타고 도시 위로 가보기로 했다. 사라토가 스프링스는 뉴욕의 대표적인 백인 부자 동네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큰 대저택들이 즐비하다.
비가 그친 다음날, 사라토가 스파 스테이트 팍으로 갔다. 치료효과가 탁월한 미네랄 샘물이 있는 뉴욕 사라토가 스프링스는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리는 아름다운 관광명소이다. 다리가 불편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늘 즐겨 찾았던 곳이고, 말년에 조지아에 소아마비 아동들을 위한 치료 목적의 스파와 휴양지를 계획하고 지을 때도 이곳을 먼저 떠올렸다고 전해진다. 그가 숨을 거둔 곳도 스파가 있는 휴양지였을 정도로 루스벨트 대통령은 스파를 좋아했다. 오늘날 조지아의 웜스프링스 지역에는 작은 백악관 Little White House라는 이름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미네랄 샘물이 나온다는 곳을 찾아가 봤다. 나탈리 바빗의 [턱 에버레스팅 Tuck Everlasting]에 나오는 영원히 늙지 않는 신비의 샘물인 양 아주 조심스럽게 받아서 살짝 입에 대어보았다. 톡 쏘는 탄산 맛이 아주 강했다.
신기한 마음에 두 병을 담아 품에 안고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 여러분이서 한참 물을 받고 계셨다. 저 아래서 물을 받았는데 이 물이랑 차이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까 우리가 마신 그 물은 탄산이 표함 된 유황 물이고, 이물은 탄산이 없는 그냥 샘물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남편은 프레쉬 워터가 아닌 톡 쏘는 맛의 스프링 워터가 더 좋다고 했다. 할아버지께 어떤 물이 더 좋으시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그야 샘물이 더 좋지, 마셔보면 알아"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제대로 된 유황 샘물을 보려면 저기로 가보라며 먼 곳을 알려주셨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과 딸아이는 한참 달려가고, 나는 물을 받고 계시던 다른 할머니에게로 갔다. 내가 다가가자 할머니는 그 물 맛이 테러블 한데 알고 받은거냐고 물으셨다. 남편은 그 물 맛이 더 좋다고 한다고 말하니 고개를 저으시며 그 물을 어떻게 마시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남편이 원래 좀 별난 사람이라고 살짝 귀띔해주었다.
천천히 걸어갔다. 다다라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안내문이 있어서 읽어보니 19세기 역사부터 상세히 설명이 되어있었다. 이곳에 치료 효과가 있는 미네랄 샘물이 분출된다고 알려지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급기야 중장비를 갖춘 가스회사들이 너도나도 몰려와 탄산을 고갈하게 된다. 그러자 이곳을 관리하기 위한 뉴욕주법이 통과되고 오늘날까지 동부지역 유일한 미네랄 샘물로 지켜오게 되었고, 1962년 주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하늘로 분출하는 것은 탄산이 포함된 sulfar water 유황 샘물이고, 땅으로 졸졸졸 흐르는 것은 spring water 샘물이라고 되어있었다. 뜨거운 유황 물이 분출되는 간헐천과 찬물이 분출되는 이곳의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읽어 보고 나니 옐로우스톤의 분출되는 게이져는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뜨겁고 이곳은 물이 차가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라토가 스프링스에서 현재까지 물이 분출되는 곳은 여러 곳이 있지만 게이저 아일랜드 Geyser Island와 오렌다 Orenda 만 개방을 하고 있고, 나머지 호손 Hathorne, 헤이스 Hayes, 폴라리스 Polaris, 찰리 Charlie 등은 보통 사람의 접근이 힘들다고 했다. 우리는 오렌다 Orenda 샘물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두 형제가 낚시를 하던 아름다운 몬타나 계곡을 닮은 길을 따라 발아래 끈적끈적한 연노랑색 물을 밟으며 거대한 유황 바위로 가게 된다. 가까이 다가가자 옐로우스톤에서 맡았던 독특한 유황냄새와 같은 냄새가 훅하고 느껴졌다. 옐로우스톤이라는 이름도 유황과 철로 인해 노랗게 물든 바위 때문이었다.
드디어 우리가 찾던 오렌다 스프링스에 도착했다. 탁월한 치료효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다. 미네랄과 철분이 아주 많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철 좀 게 많이 마시라며 서로 물병을 입에다 대며 장난을 쳤다. 그렇게 물도 많이 마시고, 빈병에 물도 받고 아래로 내려와 깊은 숲 속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을 했다. 곳곳에 벤치와 바비큐 그릴이 마련되어있었다.
겨울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찾는지, 장작을 땐 흔적이 남아있었다. 나무는 풍성하고 풀잎 향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경쾌한 새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린다. 샘물도 좋지만, 경치가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여름이 되면 얼마나 사람이 많을지 가히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사라토가 기념비 Saratoga Monument 가 있는 곳으로 갔다. 사라토가 내셔널 팍의 일부이다. 그 유명한 1777년 사라토가 전투 백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이다.'승리의 숲 Victory Woods' 라고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이름모를 전사자들의 묘가 마련이 되어있었다. 그곳에서 차로 15분 정도 가면 사라토가 전투를 기념하는 사라토가 내셔널 팍이 나온다. "지난 천년 동안 가장 중요한 전투가 일어났던 역사적인 장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사인이 걸려있었다. 7학년 때 미국역사를 배우며 미국독립과 관련해 사라토가 전투에 대해 배웠다는 딸아이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773년 보스톤 티파티 사건을 시작으로 1775년 매사추세츠 렉싱턴과 콩코드 지역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13개 주가 영국군에 대항해 싸우고,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문이 발표되고, 1776년 보스턴에서 후퇴한 영국군들이 뉴욕 사라토가를 침입했지만 사라토가에서 패했다. 사라토가 전투의 역사적 의미는 이 전투에 승리함으로서 프랑스가 1778년 미국혁명군에 합류하고, 이어 1779년에는 스페인에 합류하며 미국독립의 발판을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뉴욕에서도 후퇴한 영국군은 사우스 캐롤라이나까지 밀려가며 마침내 1775년부터 시작되었던 미국혁명전쟁이 1783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고요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라토가는 1777년 당시는 영국군에 의해 피비린내나는 전투장이었던 것이다. 저 멀리 노을이 지는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잠시 숙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