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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 스페이스 Oct 17. 2017

160년 전통의 호텔에서 보낸 로맨틱한 하루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보고 싶어도 포기해야 하는 코스가 있다. 와이너리, 바, 스파, 그리고 카지노 등이다. 신기하게도 이 사라토가 스프링스에는 이 네 가지 모두가 모여있다. 아이 없이 우리 둘만 남은 이틀간, 남편과 나는 작은 일탈을 하기로 맘먹었다. 먼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사라토가 인 The Inn at Saratoga 에 예약을 했다. 아이들은 이런 오래된 호텔을 불편해하므로 올 수가 없었다. 1843년에 세워져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이 호텔은 다운타운에 위치하고 있다.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다운타운으로 걸어가서 저녁을 먹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술도 한잔 하고 오기에 좋다. 내부로 들어가면, 1800년대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빅토리안 스타일로 장식이 되어있다. 이곳에서 풀코스로 제공되는 저녁을 먹고 나면 라이브 뮤직 공연이 이어진다. 벽에는 오래전 역사를 알 수 있는 그림과 역사적인 사진들이 가득 장식되어있다. 엘리베이터 안에도 독특한 그림들로 삼면이 장식되어있다. 



복도도 엘리베이터 안도 삐그덕거리지만, 그런 느낌이 오히려 정겹다. 호텔 입구에는 "현재와 과거의 완벽한 조합인 사라토가 스프링스 인 The Inn at Saratoga is the perfect marriage of past and present"라고 적혀있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꽤 넓은 방 안으로 들어서면 역시 빅토리안 스타일의 가구들로 가득하다. 남편이 싫어하는 기둥 달린 침대가 있고, 장식이 특이한 커다란 원형 테이블과 그린색 벨벳 암체어 두 개가 놓여있다. 커다란 TV가 놓인 장식장과 옷장이 있고, 창가 쪽에는 전신 거울도 있었다. 깔끔한 화이트 분위기의 욕실은 모던한 현대식이었다.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호텔에 가면 가끔씩은 좀 불편한 곳들도 있는데 이곳은 적절하게 조화되어 편했다. 



짐 정리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호텔을 나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생맥주를 만들어 판매하는 유명한 양조공장 겸 술집이었다. 역시 30-40분 정도 기다려야 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얼마든 기다릴 용의가 있어서 전화번호를 남기고 타운 타운 구경에 나섰다.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와서 다시 갔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 날이 저문 다음이었다. 먼저 6온스짜리 생맥주 여섯 개가 동시에 나오는 샘플러를 주문했다. 다양한 맛을 시도해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특히 레몬빛깔이 나는 맥주는 올해 맥주대회에서 수상한 맥주라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맛이었다. 둘이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이 밤은 점점 깊어갔다. 알딸딸하게 취할 즈음, 떠들썩하던 야외도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조용해졌다. 우리도 술잔을 다 비우고, 열 시가 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오면서 남편이 카지노에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취기가 돌아 호텔로 가고 싶다고 하자, 남편은 안가보고 후회하지 않겠냐고 다시 물었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나중에 아쉬울 것 같기도 해서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카지노 역시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다른 카지노랑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다른 카지노에 비해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인근 스키드모어 칼리지 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이곳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괜히 걱정이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박도 중독성이 있어 어쩌다 한번 빠지게 되면 쉬이 헤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 년에 고작해야 한 두 번 정도 카지노를 오게 되는데, 카지노에 오면 그냥 설레고 들뜬다. 그냥 분위기만 좋아할 뿐 흔한 블랙잭도 못하고, 당기는 슬롯 머쉰만 하게 된다. '타이타닉'이라는 머쉰도 있어서 신기해서 구경했다.   


호텔로 돌아가니 자정이 넘어있었다. 단잠을 잔 다음날 아침, 시폰 커튼 사이로 햇살이 들어올 즈음 눈을 떴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이곳의 아침식사는 어떤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로비로 내려가니 잔잔한 음악과 커피와 쿠키 향,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 등이 나의 오감을 깨우는 듯했다. 무늬 없는 하얀 커피잔과 파랗고 잔잔한 꽃무늬 커피잔이 가득 들어있는 그릇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빵 종류가 많았다. 베이글, 컵케익, 여러 종류의 머핀 외에도 패스트리와 카스텔라, 파운드케이크도 있었다. 행복했다. 커피와 과일 칵테일, 카스텔라 두 쪽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또 탄수화물 중독 운운하며 단백질부터 먹으라는 남편의 잔소리에 소시지와 스크램블 에그, 감자, 샐러드를 가져왔다.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오가는 사람들 구경도 참 재미있었다. 특히 식사 공간이 그다지 크지 않아 옆 테이블 이야기가 다 들렸는데 특히 빨간색 산호 귀걸이에 초록색 꽃무늬 스카프가 참 잘 어울렸던 은발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 호텔의 역사이야기는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아 계속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곧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아쉬움은 커져갔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미리 예약을 해둔 루스벨트 스파로 갔다. 치료와 휴식을 위해 이곳을 자주 방문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지은 곳이다. 예약시간 15분 전에 도착을 했다. 아침 공기가 참 상쾌해서 저 멀리 차를 세워두고 걸었다. 



멋진 복도를 한참 따라가다 보면 입구가 나온다. 예약 명단을 확인하고, 미네랄 배쓰에 아로마 테러피를 추가하겠느냐고 물어서 그렇겠다고 하니 4가지 향 중에서 선택하라며 하나하나 뚜껑을 열어 확인해주었다. 라벤더 향이 맘에 들어 그걸로 하겠다고 했다. 파란 셔츠를 입은 직원이 와서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가면서 커다란 컵에 물을 한 잔 받아서는 다 마시라며 말했다.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가니 화장실이 딸린 독방에 침대와 욕조가 놓여있고, 욕조 안은 미네랄워터로 가득 차 있었다. 물이 미지근하면 뜨거운 물을 틀어도 되는데, 원래 미네랄워터는 차갑기 때문에 너무 뜨겁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추우면 옆에 스팀 사우나에 가서 몸을 데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용하는 미네랄워터는 링컨 샘물에서 온다고 하고 미네랄 배쓰에 대해 기본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30-40분 후에 다시 올 테니 그전에 탕에서 나오고 싶으면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말하고 나갔다. 알칸소에서 경험한 유럽식 스파는 직원이 꼭 붙어 따라다니다며 다양한 코스를 경험하게 해주었는데 이곳에서는 혼자서 알아서 하는 분위기였다. 살짝 섭섭한 맘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로워서 맘은 편했다. 



데스크에서 준 아로마를 풀고 욕조 안으로 들어가니 향도 좋고 물도 꽤 따뜻하고 좋았다. 불을 끄고 작은 촛불만 켜져 있는 채로 잔잔한 음악까지 흘러나오니 어느새 잠이 솔솔 오는 것 같았다. 다 끝난 뒤 옷을 갈아입고,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봉투에 팁을 넣어두고 나오면 된다. 락커룸으로 가서 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미네랄 배쓰를 했으니 당장 샤워는 하지 말고 라운지에서 미네랄워터나 차를 마시면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아늑한 느낌의 라운지 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모두들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한쪽에는 각종 차와 과일, 물 등이 마련되어있다. 잡지책을 읽으면서 쉬다가 스팀 사우나도 간단하게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한두 시간 여 동안 스파를 마치고 나오니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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