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트 스페이스 Oct 11. 2017

메인, 포틀랜드의 맛있는 기억들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10월,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만날 수 있는 메인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다. 뉴욕 롱아일랜드의 가을빛을 닮은 하늘색 자동차에 짐을 싣고, 도서관에서 빌린 존 그리샴의 신작 [까미노 아일랜드] 오디오북을 챙기고, 스타벅스에서 벤티 모카 한 잔을 받아 들고 북쪽으로 가는 하이웨이를 탔다. 뉴욕에서 메인까지 먼 길, 하지만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 배, 기차에서는 내적인 대화를 쉽게 끌어낼 수 있다"라고 했던 알랭 드 보통의 말을 기억해내며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메인에 들어와서도 많은 곳들을 들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대했던 곳 중 하나는 포틀랜드였다. 포틀랜드의 첫날, 올여름에 새로 생겼다는 한식집 'YOBO'라는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일반 한식집은 아니고, 식사와 와인을 함께 판매하는 특별한 집이었다. 전체 테이블을 꽉 채운 손님과 입구에서 기다리는 손님들까지도 동양인은 아무도 없었다. 애피타이저는 메인의 특산물 랍스터 회였다. 아주 신선했다. 핑크빛 소소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랍스터 회보다는 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가 더 많다는 사실이 슬프기까지 했다.


메인 요리로는 돌솥비빔밥과 해물파전을 주문했다. 반찬이나 김치는 따로 돈을 더 내야 한다는데, 어떤 반찬이 나오나 궁금해 주문했다. 딱 두 가지, 무조림과 고사리무침이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나왔다. 돌솥비빔밥은 일반 뚝배기보다는 작고, 일식집 코스요리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알밥 사이즈보다는 조금 더 컸다.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평소보다 양이 작아서 맛있게 느껴지는 거라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식사를 하며 메인 여행 계획과,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백인 할아버지가 우리 쪽으로 몸을 향하시더니 말을 걸었다. "한국사람이세요?" 그렇다고 하자, 반갑다며 한국말을 아주 조금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지난 5년간 대구의 영남대학교에서 '실용영어'를 가르치셨고, 지난 학기를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지 채 한 달이 안되었다고 하셨다.    

무척 반갑고 신기했다. 할아버지는 계명대학교에서도 교양영어를 가르치셨고 줄곧 대구에서 사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학생들이 '부지런하고 순종적인 diligent and obedient'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소박한 자연과 경치를 정말 좋아하고 특히 강릉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치와 불고기를 좋아해서 가끔 한국음식이 생각나면 이 레스토랑을 찾는데, 주방장은 세 살 때 미국으로 온 한국인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미국 레스토랑이 그렇듯이 테이블이 가까이 있어 마치 한 테이블에 앉은 일행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아이들 교육 이야기도 나누고 한국과 미국 여행 이야기도 했다. 메인에 오랜만에 온다며 포틀랜드에서 추천할만한 맛집이 있느냐고 물으니, 단번에 "Scales'라는 곳에 꼭 가보라고 하셨다. 두 분은 아일랜드에서 살기에 페리로 이동하는데 분위기도, 음식 맛도 좋은 바닷가에 위치한 레스토랑이라고 했다.

우리보다 먼저 식사를 하신 두 분은 먼저 일어나셨고, 헤어짐이 아쉬울 정도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 연세에도 열심히 일하고 많은 곳을 여행하며 사는 두 분의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남편이 말했다. "저런 분들께 영어를 배웠더라면 참 재미있게 배웠을 것 같아. 친절하고 다정하고 유머도 풍부하고 말이야"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포틀랜드에 올 때마다 두 분이 생각날 것 같다.


다음날 밤, 다른 일정 하나를 포기하고 두 분이서 소개하신 '스케일스'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포틀랜드 다운타운에 와보니 메릴랜드 애너폴리스나 볼티모어의 이너하버가 생각났다. 분위기가 비슷했다. 예쁜 커피숍과 바, 레스토랑들이 많았다. 배들이 가득 정박해있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아니다"라고 했던 파울로  코엘로의 말도 생각났다. 이 배들은 내일이면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


스케일스는 바닷가에 붙어있어서 선착장을 따라 조금 들어가야 했다. 포틀랜드 아트 뮤지엄과 사이언스 뮤지엄을 지나서 갔다. 입구에 'SCALES"라는 간판이 아주 작게 붙어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뭔가 신선한 충격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던하면서 세련된 분위기인데 살짝 어시장 같기도 했다. 주방을 살짝 들여다보니 웬만한 레스토랑 하나 더 지을 만큼 길고 넓었다. 랍스터, 조개, 홍합들은 물론이고 크고 싱싱한 생선들이 파닥거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먼저 따뜻한 커피와 시원한 맥주를 주문했다.


애피타이저로 먹은 굴, 세 가지 종류의 굴을 다 맛볼 수 있다. 지금까지 먹어본 굴 중에 최고의 맛이었다. 잔뜩 기대했던 해산물 스튜, 첫술을 뜨자마자 남편과 동시에 "어, 된장찌개 맛이 나는데?"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갖가지 해산물을 듬뿍 넣고 걸쭉한 고추장을 살짝 풀어넣은 영락없는 된장찌개 맛이었다. 이런 맛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지만 정말 우리 입맛에 딱 맞고 맛있었다. 남편은 술 마신 다음날 해장하기엔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다음번 포틀랜드에 와서도 꼭 다시 이곳에 와서 다른 음식들을 먹어보자고 했다.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서 다 먹고, 아이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우리끼리 맛있는 걸 먹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엄마 아빠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더없는 기쁨과 위안일 거라는 생각은 아이들이 다 큰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맥주와 커피도 마시며 그 분위기에 취해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새 문 닫을 시간이 다가왔다. 랍스터도 자취를 감췄고,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생선들 정리를 하고 있었다.


깊어가는 포틀랜드의 밤, 더 이상 로맨틱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선착장을 거닐었다. 바닷바람에 초록색 치마가 제맘대로 너풀거렸다. 깜깜한 바닷가 저 멀리 초록 불빛이 깜빡였다. [위대한 개츠비]의 '초록 불빛' 이 생각났다. 어둠 속 강 너머 데이지의 집을 바라볼 때마다 반짝였던 초록 불빛, 희망의 근원이자 삶의 이유였던 그 불빛, 이 바닷가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초록 불빛도 분명 그런 희망을 안겨줄 것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