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너는 특별해!>
“저게 뭐예요?”
“저거? 숫놈들을... 저기서 폐기하는 거야.”
“What is ‘폐기’?”
“말이 좀 어렵지? 음... 숫놈은... 맛이 없어. 알도 못 낳고, 아무 쓸모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꼭 쓸모가 있어야 되는 거야. 알았지?”
영화 <미나리>의 제이콥과 아홉 살 아들 데이빗의 대화다. 병아리 감별사인 제이콥은 병아리가 부화하면 암컷인지 수컷인지 식별하는 일을 한다. 수평아리는 달걀을 낳지 못하는 데다 살도 많이 찌지 않아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도살된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60억 마리 이상의 수평아리들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는다.
<미나리>의 이 장면을 보고 <야곱, 너는 특별해! - 날지 못하는 어느 새에 관한 이야기> 책이 떠올랐다. 책의 주인공인 야곱은 날지 못하는 앨버트로스다. 앨버트로스는 원래 물고기, 오징어 등 바다 생물을 먹기 때문에 잠수를 잘하고 크고 긴 날개로 수천킬로 미터를 날 수 있는 새이다. 하지만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간 기울어져 있었고 날지 못한다.
야곱의 엄마 아빠는 야곱을 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웃들은 야곱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야곱의 둥지로 찾아와 이러쿵저러쿵 한마디씩 한다. 어느 날 앨버트로스 무리의 우두머리인 원로들이 찾아와 ‘날지 못하는 앨버트로스는 무리에서 함께 살 수 없다’고 선언하고 야곱을 절벽에서 떨어뜨리겠다고 말했다. 야곱의 엄마 아빠가 야곱에게 시간을 달라고 사정하자 원로들은 일 년의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일 년이 지나도 날지 못하면 야곱을 절벽에서 떨어뜨리겠다는 것이다.
야곱의 엄마는 어떻게 하면 야곱을 날게 만들 수 있을지 현명한 동물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지만 특별한 해결책을 얻지는 못한다. 야곱은 아빠와 함께 섬에 머무르며 젊었을 때 유명한 잠수부였던 나이 많은 앨버트로스에게 수영과 잠수를 배운다.
야곱은 어린 앨버트로스들을 돌봐주고 그들과 같이 놀아줬다. 또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웃들은 야곱의 노래를 듣고 감탄했다.
야곱은 유명한 잠수부였던 앨버트로스의 도움으로 수영과 잠수를 잘하게 됐다. 야곱은 이제 스스로 오징어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날지는 못했고 원로들이 준 일 년의 시간은 지나가 버렸다.
원로들이 말했다. 날지 못하는 앨버트로스는 앨버트로스가 아니다. 야곱은 날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섬에서 살 수 없다. 야곱의 엄마가 ‘야곱은 날지 못하는 앨버트로스’라고 소리쳐봤자 소용없었다.
그때 무리에서 가장 존경받는 앨버트로스가 말했다. 야곱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면 아이들이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고. 야곱은 모든 노인을 즐겁고 평안하게 해준다고.
또, 어린 앨버트로스 하나가 야곱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야곱이 엄마가 없을 때 자신을 보호해 주고 위로해줬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앨버트로스들도 하나둘 야곱을 좋아한다고 야곱이 곁에 머물기를 원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로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자 수많은 앨버트로스들이 “부당하고 완고한 너희들은 필요없다”며 원로들을 갈아치운다.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야곱은 계속 섬에서 살 수 있었다. 야곱은 행복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야곱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에게 야곱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보자고 했다. 한 아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야곱아, 넌 특별해. 왜냐하면 넌 수영, 잠수, 노래를 잘하고 마음씨가 좋으니까.
비록 날지는 못하지만 넌 할 수 있는 게 많잖아!
그리고 원로들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하지마!
그 녀석들은 원래 나쁜 놈들이야!
주눅 들지마!
평소에 이웃들에게 노래도 많이 들려주고, 어린 앨버트로스들을 잘 돌봐주고 놀아줘, 잘할 수 있지? 그리고 너도 앨버트로스야.
원로들이 너보고 앨버트로스가 아니라고 해도
듣지마.
너는 분명히 앨버트로스니까!
또 다른 아이는 이렇게 썼다.
네가 날지 못해서 가족들이 속상해하고 걱정했지. 난 그 부분을 읽을 때 마음이 아팠어.
너는 억울했을 것 같아. 너는 특별한 점이 많은데 다른 새들이 내쫓으려고 하니까. 원로들이 너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이웃들이 막아서 다행이야.
그 장면을 보고 내 마음도 가벼워졌어. 네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야.
야곱아, 이웃에게 사랑 받으며 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날기를 바랄게. 야곱아 안녕.
책을 다 읽고 나서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를 봤다. 놀랍게도 이 책은 작가가 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쓴 책이었다. 작가 자신이 야곱의 엄마였던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파울과 그리고 날지 못하는 모두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걸까? 야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다른 앨버트로스들의 결정 덕분이었다. 다른 앨버트로스들이 야곱을 살리기로 결정했다. 야곱의 노랫소리가 아름다웠고 야곱이 어린 앨버트로스들을 돌봐주는 등 친절을 베풀었기 때문에 야곱은 다른 앨버트로스들의 호감을 얻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버트로스들이 ‘날지 못하는 앨버트로스는 무리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수했다면 야곱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 만약 야곱이 노래도 못하고 괴팍한 성격에 다른 앨버트로스들의 호감을 얻지 못했다면, 아이들을 돌봐주는 쓸모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미나리>의 수평아리와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하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야곱은 주인공이지만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모두가 야곱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와중에도 야곱은 자신의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야곱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야곱이 아니라 다른 앨버트로스들이다. <미나리>의 제이콥처럼, 작가도 아이에게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서 리뷰를 좀 찾아봤다. 장애가 있는 아이도 노력하고 장점을 살리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장애인 가정에 용기를 주는 책이다 등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아마존 리뷰 중 ‘야곱은 결국 불쌍한 새인가?’라는 제목의 리뷰가 눈에 띄었다. 내용은 이랬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슬펐다. 야곱은 날지 못하는 대신 무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38년 동안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살아왔다. 야곱의 이야기를 나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내가 특별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쓸모없는 사람은 사랑 받을 수 없는 건가? 작가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좋은 일을 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확신하지만 그 의도가 성공적으로 달성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어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했습니다)
이 책이 중증 장애인을 포함하여 자신의 장점과 쓸모를 증명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사실은 비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쓸모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사회적 요구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토록 거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직시하게 만드는 동화책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늘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책이 진실하다고 느꼈다.
작가는 자기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를 바랐을 것이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쉽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어. 하지만 야곱처럼 너의 인생은 해피엔딩이 될 거야. 세상이 호락호락하진 않지만 야곱처럼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돼. 남들과 조금 다를 뿐 결국, 다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