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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08. 2023

여자 나이 마흔

며칠 뒤면 만 나이로도 마흔이 된다. 케이트 윈슬렛이 영화 <원더휠>에서 마흔이었다. 배우가 꿈이었던 그녀는 놀이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그녀에게는 내연남이 있었다. 내연남은 그녀보다 더 젊고 예쁜 여자가 나타나자 그녀를 차버린다. 그녀는 생각한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게다가 하나 있는 아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불장난을 일삼아 그녀를 미치게 만든다.


예전에 대학교 조교로 일할 때 알게 된 여자 강사가 있었다. 어떻게 해서 친해졌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여자 강사는 국문과 박사 수료 후 강사 일도 하고 조교로도 일했다. 약간 촌스럽고 얌전한 원피스를 즐겨 입었고 머리카락 끝이 안으로 말리도록 꽤나 정성스럽게 손질을 한 어깨 기장의 머리였다. 또 간호사들이 병원에서 즐겨 신는 스타일의 투박하고 철 지난 구두를 신었다.


나는 그 여자 강사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 선생님에게는 정말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점심 시간에 같이 점심을 먹고 나면 어떤 나이 많은 남자한테 전화가 온다는 거였다. 그러면 캠퍼스를 산책하다가도 그 선생님은 온 신경을 전화에 집중했는데 내가 뜨악한 건 그 선생님의 미치도록 간드러지고 애교스런 목소리와 말투였다. 지적이고 교양있는 여자가 털털한 목소리로 나와 얘기하다가 갑자기 돌변했다.


어느날 점심시간 마다 전화하는 그 나이 많은 남자가 선생님한테 옷을 선물했는데 선생님은 화가 났다. 할머니들이 입을 법한 잔꽃무늬 몸빼바지 같은 옷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나한테 그 얘기를 하면서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라며 씩씩거렸다. 그 남자는 맘에 안 들면 바꾸라고 했다. 그 옷 판매점이 학교 근처에 있어서 같이 옷을 바꾸러 갔던 기억이 난다. 바꿀 옷이 없어서 스타킹으로 바꿨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그 나이 많은 남자한테 전화가 오자 목소리는 다시 간드러졌다. 아니 이 성숙한 여성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둘은 무슨 관계일까.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어느 날 같이 김밥집에 갔는데 김밥집 주인이 그 선생님한테 몇 살 됐냐고 물었다. 그 선생님이 대답했다. “저 마흔 다 됐어요.”


마흔이면 마흔이고 아니면 아니지 마흔이 다 된 건 뭐냐는? 그 선생님은 자신이 마흔임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이십대였던 나에게 그 선생님은 이모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이모 같은 분이 이상하게 굴어서 당황스러웠었는데 내가 바로 그 나이라니. 


케이트 윈슬렛도 그렇고 그 선생님도 그렇고. 여자에게 마흔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이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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