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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Dec 12. 2021

34세, 여자, 미혼, 프리랜서

귀국이 가장 무서웠던 부분 나의 아이덴티티?

한국 : 개인주의 보다는 집단주의 직업보다는 직장이 나의 신분이 되고, 적당한 나이에 학교를 가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야 정상이라고 정의하는 나라. 


이게 내가 생각하던 한국의 정서였다. 그래서 나는 더 가고 싶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자아 실현 동기가 강한 야심있는 여성이지만 어떻게 말하면 현재의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 나 자신에게 못된말을 서슴없이 하던 사람. 성공하고도 싶었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커리어를 갖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고 싶었다. 


그런 긴-여행에서 나는 다시 돌아왔고, 두려움을 마주쳐야 했다. 


만나이로 나이를 계산하는 나라에서 돌아온 나는 2살을 갑자기 먹어버렸다. 34살 미혼의 불분명한 직업의 여성 그 타이틀이 무서웠다. 그 치열한 20대를 보낸 나의 결과가 이거일까라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또 나 자신에게 부정적인 라벨을 붙이는걸까? 


외향적인 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수 없이 그리워 하던 나의 친구들, 대부분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었다. 그 8년이라는 사이에 아파트 가격은 놀랄 만큼 올라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나가있는 사이에 신도시로 이사를 가셨고 예전 살던 동네는 가로수가 성큼커서 숲이 된거 같다고 농담을 했다. 


연락한 친구들의 질문은 단연코 먼저 결혼이었고 그 다음 질문은 '뭐하고 살아?'였다. 우물쭈물 나는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딱 한마디로 나 소속이 되지 않았기에 "N사 또는 어, 공무원" 정도로 상큼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결국은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이미 바빠지고 오랜동안 만나지 않던 나를 반겨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도, 모든것은 기우였다. 고맙게도 우리는 다시 학교 다닐때의 추억을 곱씹으며 웃었다. 서로 기억이 나지 않는 에피소드들을 풀며 깔깔거리고 웃고, 평소라면 체중관리를 걱정하며 피하던 치킨 피자 떡볶이를 학교 다닐 때처럼 마무리 했다. 


서로 소식을 모르던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만나고 싶고 언제오냐고 묻고 다시 약속을 잡았다. 정말 다행이다. 올해는 내 생일에 크리스마스에 그리고 새해에 혼자 있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누군가의 당연한 일순위가 되어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그 곳에 살면서도 항상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귀국이 고민이야 가족들,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고, 여기 외국인으로 덩그러니 혼자 사는게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나의 정체성을 하나 되찾았다. 나는 가족적인 사람이야, 멋지지 않아도 되고, 성공하지 않아도 되고, 번듯한 직장이 없어도 돼, 엄마 아빠 남동생 여동생 이렇게 다섯식구 근처에 살고 싶어, 초대 받아야만이 가지 않아도 되고, 눈치 안보고 하고 싶은말 하고, 먹고 싶은거 먹고, 아프면 당연하다는 듯이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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