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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Dec 12. 2021

볼드한 모험가,

첫 직장을 그만두고 떠난 해외 인턴 기행 그리고 8년 만에 돌아온 소감

2013년도에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꿈꾸어 왔던 일이란 나를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뒤돌아 가고 싶지 않았고,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3년을 꾹 참던 회사생활을 내려놓고, 다행히 아직 어린 나이에 해외 인턴쉽을 지원할 수 있었다. 


초록색 에바항공, 키티로 데코 레잇 된 기내에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해방된 느낌이랄까. 평탄할 줄 알았던 해외 생활은 8년을 약간 넘기고, 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포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차오르는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턴쉽을 마치고 대학원 졸업 후 다시 한번의 인턴쉽 그리고 마케팅 에이젼시를 운영하고,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존경하던 미국의 사업가 일론머스크의 주100시간 일하기가 나라는 평민은 할 수 없다는 나의 한계치도 깨달아 버렸다. 한참이나 치료를 받았지만,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 더 이상의 진전을 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멀어진 느낌이었고, 너무 외로웠다. 식료품점에서 발꿈치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겨우 걸을 수 있는 몸으로 5파운드(약 2.5kg)의 쌀을 들며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매해 겨울이면 겪는 향수병에 집에 가면 펑펑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내가 사랑하던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해변가, 다운타운의 아름다운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내 아파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메리칸드림을 이뤄 집에 금의환향하고 싶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고 8년 만의 고민을 순식간에 접고 바로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 덩그러니 남겨진 내 아파트 내가 정말 사랑하던 아름다운 wework 오피스를 이제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모두에게 난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다.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적어도 나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뭐가 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는지 그 큰 꿈과 고집으로 꾹꾹 눌러오던 가족의 그리움과 고향의 향수에 터져 버린 눈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2주간의 격리에도 나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꿈같았다. 얼마나 보고 싶던 가족이고 친구들이고 나의 고향이었던가. 포기하고 오게 되었지만 그것을 대신하는 내 안의 충족감은 나를 진심으로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 유명한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전화한 날 바로 의사의 진료를 받고 바로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이 미국에서는 2-3개월에 걸쳐서 진행되는 게 흔한 일인데,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사실 허탈한 웃음도 나왔다. 살고 봐야 할게 아닌가. 살고 봐야 일도 커리어도 성공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낫지 않은 나의 몸은 휴식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오랜 꿈이었던 글쓰기를 다시 할 수 있는 시간도 주었다. 바닥까지 갔었던 나의 불안감,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점수가 B가 나오지 않으면 비자를 잃을 수 있었기에 기초가 없이 시작한 경영학 공부에 정말 불안에 떨며 공부하던 시절이 나에게 리턴이 될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준비 없이 갑자기 온 한국행에 모든 것을 잃고 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모든 것을 막론하고, 나에게 자국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나를 평온하게 만들었다. 


여자 나이 34세 정말 오랜만에 와서 다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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