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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Dec 17. 2021

미국 팬대믹에 서민이 살아남는 법

한국 보다는 확실히 관대한 미국의 정책들

자본주의의 나라답게 의료나 방역은 절대로 최고라고 할 수 없지만 경제적인 지원은 놀랄 노자이다.




2020년 3월 19일 캘리포니아에 STAY HOME 명령이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내가 사업을 시작한답시고, 다니던 회사를 나오자 마자 2주만에 명령이 떨어졌다.

직원들이 출근하는 회사들도 다 재택근무 명령이 떨어졌다.


왼쪽, 캘리포니아에 2020 3월 첫 스테이 홈 명령이 떨어졌다 왼쪽 포브스 발췌 2020 03 12 월 역사상 주식 시장 총 주가가 2,352로 최고 많이 떨어진 날로 기록됨



오른쪽 포브스 기사를 캡쳐한 이미지 ( 2020 March 12 역사상 가장 많이 포인트가 떨어진 날이었다.)



내가 기억하기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패닉이었다. 그 전까지만해도 우환바이러스라니 그런게 있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놀랐다. 실생활에 정말로 적용이 되었고, 모든 지표들이 나락으로 드랍되었다.

(사실 폭락장에 사야 한단말이 있지 않던가, 가진 현금 모두 투자해서 난 사실 돈을 좀 벌었다.)




스테이홈 명령이 후의 실업자 그래프-LATIMES 발췌



바로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그 엄하다는 캘리포니아의 노동법에도 출근 하자 마자 임원실에 불려가 구조조정을 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나마 다행은 실업수당과 천재지변으로 인한 지원금이 나와서 월 4천불 미만을 받던 사람들은 오히려 일을 쉬는게 수입이 좋았다. (연간 7만5천 이상을 벌던 노동자는 해당되지 않는다.)


소규모 사업을 하던 중소 상인들도 그 동안 사람을 고용하고 임대료를 지불하며 사업을 해왔었다면 그에 맞게 나라에서 적은 이자로 대출을 해주었다. 직원이 3명이 있고, 3천불 정도의 임대료를 지불하던 지인은 우리나라돈으로 1억 6천을 받았다고 했다. (사실 여부는 서류로 확인한적은 없다.) 이 대출금액에서 직원 월급과 운영비용을 탕감하여 잔액만 갚으면 되니 사실상 공짜로 뿌리는 돈과 다름이 없었다.


달러를 생산하는 나라이고, 원칙적으로 이런식으로 돈을 무상으로 뿌리는것이 불법이지만 그런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에게 나라에서 보증을 서주니 누구나 앞다투어 대출을 받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에센셜 종인 사업장만 운영을 허가해 주었기에 급하게 용도 변경을 하고 만든적 없던 마스크를 생산하며 회사를 비상체제로 돌린 경우도 많았다.


다들 스트레스에 예민할때 의외로 해고를 당한 사람들은 여유로웠다. 책임을 져야할 가족이 없기도 했지만, 나라에서 월세를 내지 않아도 세입자를 쫒아 낼 수 없다는 법령을 발표하고 (원래는 3개월 월세가 밀리면 세입자를 쫒아낼 수 있다.) 후일에는 엘에이시 자체에서 예산을 책정하여 세입자가 코로나사태로 직장을 잃었거나, 수입이 줄었을 경우 시정부에서 월세를 전부 갚아주었다.


나라에서 월세를 주고, 실업 급여를 주었고, 나라차원에서 재난 지원금이 매주 60만원 가량이 나오며, 거기다 상당기간 수입이 없었기에 저소득층으로 분리가 되어서 기초 생활 수급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까지 누렸다. food stamp(우리 나라에선 이런 제도가 있는지 모르겠다.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쿠폰이다.)도 지급이 되어 마트에서 식료품도 구매가 가능했다.


내가 귀국 후 받은 재난 지원금은 인당 25만원? 사업을 하시는 이모에게 지원된 금액은 85만원이랬다. 차이가 심하게 난다. 그러나 방역차원에서 본다면 실제로 엘에이에서 가장 크다는 시어스, 올림피아드 병원에서는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환자들을 받았고, 수용 할 수 있는 영안실이 없어 냉동 푸드 트럭으로 시체를 운반했다고 한다, 또한 사고현자에서 부상환자가 살 가망이 없다면 병원에 데려와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는 대신 소방대원이 그 자리에서 사망 선고를 하는 시자체 명령이 떨어지는 사태도 발생했다.



어느날 지인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south park - downtown LA 가장 새로 지은 빌딩들이 많은 엘에이 중심지로 아파트 월세가 비싼 지역 중에 하나이다.



무화과 잼과 고트치즈 산패그리노 스파클링워터를 간식으로 수다를 떠는데, 그녀가 푸드 스탬프로 프라임 립아이 스테이크를 샀다고 말했다. 이 비싼 아파트, 벤츠, 럭셔리한 홀푸드의 식재료들 이 모든게 팬대믹으로 인한 정부 지원금으로 그녀는 직장을 잃은지 1년이 넘었지만 이런 럭셔리한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몰랐을때 나는 그녀가 분명 적어도 준재벌 집안 일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 중 하나인데, 나의 가치관에 직격탄을 날린 장본인이다. 나는 언제나 열심히 일하고,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며, 잠을 아껴가며 자기 개발을 해야만이 이 치열한 세상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언제나 여유가 넘쳤고, 감정적인 동요가 없었으며, 압박감에 불안해 하던 나에겐 볼 수 없는 부처의 미소가 보였다.



주섬 주섬 비치용품을 챙겨와 내 아파트 수영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나에게 수영장이란 체력을 보존하기 위한 운동이였으면 그녀에겐 따사로운 캘리포니아의 햇빛을 즐길 휴양이었다. 쉴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다면 쉬어도 되는 그런 멘탈 왜 나는 생각도 못하고 살았던 걸까?  아직도 나는 그 친구가 보고 싶다. 곁에만 있어도 휴가를 온 기분이 들게 하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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