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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Dec 22. 2021

루시, 넘사벽의 중국인 친구

미국에서 만난 금수저를 넘는 Crazy Rich ,  너무 착한 그녀

엘에이의 가장 큰 매력중에 하나는 여러가지 백그라운드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온갖 나라에서 물밀듯이 온 여러인종,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이 모여있는곳,


길거리에 마약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하며 돌아다니는 노숙자들도 있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벨에어라는 지역에는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자리를 잡은 곳도 있다.



아무튼, 나의 친구 루시 아직도 그녀와 나의 첫 만남은 아마도 프로젝트메니지먼트 클래스 였을 것이다.

나의 생존 본능 첫 수업에 들어가자 마자 나는 스캔을 했다. 이 수업엔 친구가 없었으니까, 단짝없이 혼자 팀프로젝트중심의 수업을 통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어서 친구를 만들어야했다. 루시는 가장 앞줄에 한창 유행하던 자라의 술이 달린 귀걸이를 하고, 똘망똘망한 큰 눈을 하고 앉아있었는데, 분명히 나는 그녀가 한국인이 아님을 알앗지만 그 특이한 귀걸이에 관심이가 말을 걸었다.


옆에 앉아 간단하게 이름과 소개를하고 차가 없는 그녀를 데려다 주었다. 그 차 안에서 그녀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명문 MBA를 마치고, 졸업 후 실리콘밸리의 교육 플렛폼을 만드는 회사에서 주식을 공유받고 일했지만 그 회사는 문을 닫게 되었고, 본토로 돌아가려다가 그녀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되었고, 우연히 나와 같은 수업을 듣게 되었다. 작은 우물안 개구리였던 그녀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녀가 살던 동네는 전부 그녀 할아버지가 고용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이고 정확히 생각은 안나지만 그녀의 고향은 스촨? 이였는지 매운 음식이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과 삼촌은 그 가족의 유일한 여자아이인  그녀를 "공주님"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성격이 공주님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부자들은 성격도 구김없이 좋고, 착하기 까지 하다. 집한채 값 정도의 학비가 드는 그녀의 유학 비용을 댈만큼 내가 보기에 그녀는 부자였지만, 그녀는 절대로 본인은 평범하다고 했다. (아마 그녀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한국에서 일할때, 중국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어를 하던 중국인 직원은 미국에 가려면 중국에선 상당히 부자여야 한다고 이야기 했고, 나는 그말에 동의한다.


그녀가 나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건, 내가 한국인이라서였다. 그녀는 동방신기의 팬이었고 한국어를 하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좋았나보다 (이 친구 아니였으면 학업을 잘 해내지 못했을테니 Kpop 한류에 감사를 드려야 겠다.) 이때만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Are you from South Korea? North Korea? 너 북한에서 왔는 남한에서왔니? 라고 껄껄 웃다가 농담이라고 하는 외국인이 많았다. 물론 요새는 BTS, 블랙핑크덕에 그런 반응은 많이 없어졌다.


그 마을의 공주님 루시는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 본토로 돌아가 그녀의 원래 전공이었던 토목공학 분야로 취업을 할 계획이었지만 미국 MBA 중국학생 모임에서 현재 남편이자 당시 남자친구를 만났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녀에게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원했고, 그녀는 정말 겂없이 소텔(산타모니카 옆 동네)로 이사왔다.


아무튼 - 그녀의 스토리는 그렇고, 나의 개인 적으로 느낀 바는 그렇다. 어른들의 조언이 항상 있었다. 끼리끼리 만나는 거라고, 학교를 다니고, 과제를 하고, 같은 수업을 들으며 우리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그녀는 엘에이 한인타운에서 내가 소개해준 음식들을 좋아했었는데, 졸업을 하자 많이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다른 친구 시민이가 전해준 이야기로는 그 둘은 싱가폴 국제 학교에서 만났고 루시는 그곳에서도 미모와 학업능력으로 많은 인기가 있었다고 했다. 둘은 동방신기의 팬이었고 이 연결고리가 그들을 베스트 프랜드가 되었다고 했다.


일반적인 코스인지는 모르나 내가 보통 만난 중국 친구들은 어릴때 중학교 정도 되면 다른 큰도시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싱가폴같은 근교의 나라의 국제학교에서 학업을 이수 후 해외 대학원을 갈지 아니면 다시 본토로 돌아갈지 사람마다 다른 루트를 밟는듯 했다.


시민이는 싱가폴의 글로벌 기업에서 다년간일을 하고 7년차에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싱가폴에서 부모님이 사주신 집을 갖고 있었고, 여행을 하며 지내는 에어비엔비 숙박비를 그녀의 집을 월세를 내준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국제학교, 명문대학, 그리고 네임벨류 있는 직장을 돌연 그만두고 여행을 하던 그녀가 캘리포니아에 왔을때 루시와 함께 만났다. 나는 너무 신기했다. 쿨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일년이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는 그녀가 정말 멋있었다.



 마지막 여행지를 캘리포니아로 정한 그녀는 맘껏 그 생활을 즐겼고, 우리에게 동부보다는 날씨가 좋은 엘에이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고 어릴때부터 학업으로 떨어져 있던 부모님께 잠깐 갔다가 허락을 받고 돌아올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학교를 다니고 싶냐는 질문에 그녀는 어느 학교가 날 받아 줄지 모르지만 어느 위치에 있는 학교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녀는 한국어도 잘했다)


글로벌 대기업을 그만둔 선택, 학비, 생활비, 수험 기간등의 나라면 머리를 싸매고 걱정했을 것들이 그녀는 별다른 고민할 거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잊었고, 그 사이에 나는 졸업을 했고 최저 임금을 받고 일할때 그녀는 당당히 명문MBA를 입학하고 돌아왔다. 그녀가 중국에 돌아가 부모님께 그녀에게 본인의 결정을 알렸을때 흔쾌히 "그래 좋아 어서가! 가서 남자를 찾아서 결혼해!"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녀가 학교에 입학하고 그 중 누군가가 생일파티를 연다고 나도 함께 가자고 초대를 했다.(세상에 파티 이름이 지금도 생각난다 Crazy Rich Asian Birthday Party) 웨스트 할리우드 쪽 어느 수영장 딸린 멘션을 빌려  DJ / full bar가 있는 파티에 들어간 순간 나는 이게 뭐지? 엉? ㅇㅁㅇ ;;  다른 세상?? 거기서 사람들은 내가 그 학교의 석사 학생인줄 알았다. 아마 학기초라서 그런 파티를 하며 친구를 만드는 과정인가 싶었는데 하나같이 성격도 좋고 왜 이렇게 예의도 바른지,


나는 아직 초라한 인턴 나부랭이인데, 만난 그녀는 그 주말에 초대된 결혼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하와이의 프라이빗 해변이 있는 멘션을 빌려 소소한 웨딩파티를 참석하기 위해서 방문하고, 그들은 그들의 게스트들에게 모두 방을 내주고 투어를 제공하며 룸서비스까지 제공해준다는 이야기, 중국인 친구의 결혼 준비를 돕기위해 주말이면 베버리힐즈(명품거리) 쇼핑을 하는 이야기..,


당시 인턴생활을 하며 핸드폰 요금도 제대로 못내서 밀릴때가 많았는데, 그 스케일의 차이를 나의 작고 찌질한 나의 클래스는 그 상황을 쿨하게 받아주기 힘들었다.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이 UX디자인 과정을 수료하고, 직장 생활도 했으며, 회사도 운영했다. 귀국 후 몇달이 지났을까


얼마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녀가 결국 남자친구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내가 거기에 없고, 축하해줄만한 사이가 더 이상은 아니지만 그녀의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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