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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Jan 02. 2022

아 35세의 첫날, 그닥 큰 변화는 없다.

마음은 25세이건만 이렇게 나이가 먹어버렸네,

26세의 5월 나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인턴쉽을 알아보고 아 이정도 월급이면 젊으니까 살 수 있을꺼야 가서 나를 변화 시켜보자. 두근 두근 ..,



너무 재미있었던 첫해 그 다음해는 그닥- 스펙을 쌓는다고 준비도 없이 대학원에 집안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작했고, 우여 곡절끝에 졸업했다.


그리고 인턴쉽을 일년 더하고 그리고 2년 내 에이젼시를 창업하여(창업의 큰 꿈보다는 비자가 이유였다) 일하다. 귀국했다.


12월이면 미친듯이 가족이 그리워 울던 그 시절 여기오니 그런 감정은 없을지라도 화려한 다운타운의 연말 장식들 분위기들이 아쉬웠다.


엘에이 다운타운의 뷰는 뉴욕을 맨해튼보다는 못할지라도 나에게 한 줄기 희망을 주었었다. 저 많고 많은 빌딩들 저 중에 하나는 내가 소유하리라 (점점 자기 객관화가 되면 작은 오피스텔이라도 꿈을 꿨으나 그것 또한 좌절되었다 ㅎㅎ)



돌아온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이제 많이 회복이 되었다. 해외에서 오래 산사람들은 한국에 돌아오면 그곳이 그립고 외국에선 한국을 그리워한다고 들었다. 긴 여행지였던 느낌이 든다.



오자마자 2살을 더 먹었고, 몇개월 있으니 한살더 - 32살이었던 내가 이제 헉, 35살이다. 몇일전 새해가 오기전 만난 친구들 둘다 결혼을 하고 싶어했고, 하나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한명은 없었다. 왜 도대체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냐고 묻자 딸이 갖고 싶단다. 자기 조카들을 너무 이뻐하는데, 언니가 아이 3을 낳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니 본인도 그렇게 하고 싶은듯 했다.



나, 내 머릿속의 대부분은 아직도 커리어다. 한국은 what do you do? (너는 뭘하는 사람이니?) 가 아니라 where do you work? (어디서 일해?) 가 인사 라고 누군가 그랬다. 타이틀, 주위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할 수 있는 때는 따로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



거기다 미국에서 있던 친구들과는 달리 대 놓고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처녀 총각들이 포진해 있었다. 도대체 왜.., 미국이었다면 나는 정말 나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기다리고싶어 라고 말하지 저렇게 애절하게 행동하진 않는다. 매주 소개팅을 하러 지방까지 가는듯 했다.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8년이란 세월이 간극이 이렇게 컸던가? 30을 넘으며 술이 내몸에 안받다는걸 안이후로는 술자리와도 거리가 멀고, (이건 정말 사회 활동에 불편한 점이다) 관심사는 나는 아직도 온통 커리어에 꽂혀있는데, 언짢았다. 이 문화가,


아직도 예단이니 혼수니 상견례니 혼주복이니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만 있다.

신부 신랑 적어도 어느정도의 스펙과 돈이 있어야 하며, 조건과 집안을 보겨 결혼해야 한다는 문화,


누구는 의사와 결혼하며 50평짜리 아파트를 해갔다는 이야기들, 남편의 직업, 신부의 집안과 나이, 결혼을 벌써 2번했다는 이야기들 어느 회사 어느 정도 스펙의 남자와 소개팅을 한다는 이야기


정말이지 너무 불편했다.


나는 평범했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살던 친구들 대부분이 Privilege 가 있었던 부유층 자재가 대부분이었다는거 안다. 하지만 그들과 있으면서 불편함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굳이 우리는 명품을 들고 다니지도 않았고, 자동차도 적당한걸 골라 타고 다녔다.


다들 일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다 비슷한 삶을 살아 갔었다. 다들 차곡 차곡 개별적으로 돈을 모으고, 매월 렌트를 내며 둘이 합쳐서 삶을 이뤄내는 일들


아니 사실 몇몇은 집을 사주시는 부모님들도 계셨겠지만 나와는 먼이야기 였다. 그냥 나에게 있어서는 생존에 대한 생각만 강했달까?


나의 회피 본능이 다시 새록 새록 올라왔다. 동생의 남자친구가 설날에 인사를 드리러 온댄다. 그녀도 나이가 꽤 찼으니 이제 슬슬 정말로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된거겠지, 혼수 이야기, 집이야기들 정말 중요한 문제들이 떠올랐다.


남편감의 자질이나 둘이 얼마나 행복하게 연애 했냐는것은 우리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4년이나 되는 연애기간과 그녀의 나이를 무시 할 수가 없었고, 왠만하면 결혼을 시키자는 분위기가 생겼다.



근데 나는 가방순이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걸 알게 되었고, 스드메니, 신부를 도와야 할일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동생의 남자친구가 인사드리러 온다고 했다고 말했다고 하자 엄청 혼이났다. 결혼은 식장 가봐야 하는건데 주위에 소문을 내고 다니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진짜 이해가 안됐다. 왜 이런걸로 욕을먹어야 하는건지, 축하해 줘야 할일 아닌가? 그게 뭐라고 숨겨야 한다는건가)


안되는 것들의 아래 리스트들

음식점에 들어갈때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지 말란다

- 이 나이에 그렇게 행동하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인댄다.


어디 다닐때 꼭 화장도 하고 옷도 갖춰입고 다니랜다.

- 나이가 들었으니 남들 보기에 괜찮게 갖춰 입고 다니란다.


머리색이 엉망이니 다시 염색을 깔끔하게 하랜다.

- 나이가 들었으니 어두운 색으로 해야 한단다.


아무튼,



신기루같은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행복하지도 않는 삶을 겨우 겨우 연명 했던 시간들 전부 다. 왜 내 자신이 아닌 남의 조언을 곧이 곧대로 진실인냥 듣고, 거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을까.




사랑해 케이트 2022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진 않을지라도 단단한 멘탈로 가볍게 넘길 힘이 생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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