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monkeystar Jan 04. 2022

3년이 되어서야 영어가 들렸다.

토익 355점 나는 그 시점에 미국에 갔다. 

나는 공부랑은 거리가 멀다. 유치하지만 가끔 보는 인터넷 사주에 나와있지만 초년에 출세에 대한 생각이 없어 학업에는 열정이 없다고 나와 있다. 



미국에서 돌아온지 6개월째, 말을 할때 단어가 생각이 안나는 때가 있었다. 안되겠다 하고, 영어로 대화 하는 모임에 가입했는데. 토요일마다 직장인들이 모여서 되든 안되든 서로 하고 싶은말을 영어로 교류했다. 


금방 새로운 친구가 생길거라 기대했지만 아직 친구는 사귀질 못했다.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금융권 공사에서 일하시는 분들 2년만에 공무원에 합격 하신 분들 내 기준에서는 대단하신 분들이 궁금해 했다. 


"케이트씨, 언제부터 영어가 들렸어요?"


생각해 본적 없는 말이었다. 아, 이게 궁금 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음, 3년 걸렸다. 오래 걸렸다. 큰 꿈을 안고 인턴 J-1 비자를 받아간 회사에서는 한국 회사에서 심부름꾼을 했다. 나름 한국에서는 자율권이 많았는데, 신발을 뭘 신고 다녀야 하는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점심 메뉴도 내 맘대로 먹지도 못했다. 하나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경력은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했다. 



좌절감이랄까, 에이젼시에 전화했다 8년전에 7백만원이면 작은 돈이 아닌데 그 돈을 내고 여기 와서 하루 종일 원단 정리를 해야 한다니 정말 자괴감이 들었다. 컴플레인을 해봤지만 상황은 달라진것은 없었고, 이왕 왔는데 도중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국 회사였기에 그닥 영어가 늘지 않았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라는 조언은 그만 - 큰 도시에는 변태같은 외국인들 천지이다. 어린 동양 여자애가 함부로 친구를 사귀는건 난 반대이다. 


그 다음 학교를 들어갈때 ESL을 했고, 그걸 하면서도 그렇게 영어가 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는건 외국 여자애들과 룸메이트를 하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중국인 친구들을 사귀면서이다. 



보통 나이가 먹고 유학을 가면 같은 한국인들끼리 어울리기 마련이다. 외롭기도 하고, 영어 못하는 아시안을 차별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Comfort Zone을 떠나야한다. 독한 맘 먹고 한국 사람들을 다 끊었다. 그 교포 인구 세계 최고라는 엘에이에서 아웃사이더처럼 보이는건 당연한 걸거다. 정말 찢어지게 외로웠다. 그나마 겁이 없는게 내 장점이라면 장점이랄까.


나는 토종 한국인이라. 김치 조차도 새우젓, 까나리젓만 들어간건 맛이없다. 엄마가 직접 다려 넣은 황석어젓을 넣은 김치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



지금도 가만 보면 정말 용감하다. 어떻게 물어 물어 교포친구의 대학 동창이 사는 5배드룸 창고 방에 외국인 여자애들이 사는 집에 들어갈 생각을 했는지, 다행히 그런 상황에 나를 밀어 넣으니 공부 취미가 없던 나는 일상 대화 정도는 가능해졌고, 학교를 들어가서야 조금 편안하게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점에 난독증이 있는 느낌이 들어 자존감이 바닥이 되는데, 그 상황을 한 1년은 버텨야 자유롭게 대화가 가능하다. 


외국어는 그냥 별거 없어요,  그 외국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생각하고(혼잣말 한다고 미친 사람이라고 오해 받을까봐 겁먹지 마세요 어차피 다시 만날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써야합니다. 시간대비 아웃풋이 나와요.


아마 미국에 오기전에 토플 아니면 토익이라도 어느정도 준비를 하고 온 케이스라면 나처럼 이렇게 바닥을 치진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금방 늘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살아 남을 만큼 정도의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You should feel greate about what you've done and i'd hate to see you let anyone take that away from you


위에 뜬금 없는 인용구, 영화 인턴에서 나오는 말이다. 세계적인 인터넷 쇼핑몰을 키우는 리아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너무 외로워서 바람을 피웠다는 그의 변명에, 가족에게 시간을 할애하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영역을 대체할 전문 경영인을 고용 하려고 하자, 그녀의 나이든 인턴이 그녀에게 조언한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이뤄낸 당신을 자랑 스러워 해야해요, 나는 다른 사람이 당신이 이룩한걸 빼았는다는게 싫으네요"






현재 대학생들이라면 선망하는 직업은 공기업 국제 협력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분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라면 정년이 보장되고, 여러 경험치를 쌓을 수 있는 부서에서 일한다는것을 동경하고 있을텐데, 그는 그가 가진 달란트가 별것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영어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스펙이고, 없으면 마이너스인 능력이에요."


이게 바로 자신이 가진것을 알지 못한다는 뜻 아닐까. 해외 유학을 하지 않은 그는 혼자 공부해서 카투사를 전역하고 이런 훌륭한 커리어를 가졌음에도, 그의 성취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심지어 나는 그를 처음 만났을때 조용히 자기가 원하는 말을 다 할 수 있음에 당연히 그가 장기간 해외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사람인줄 알았는데도 말이다. 


분명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고, 생각을 키워 자신의 장점도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굳이 자만할 필요 까진 없지만. 감사할 일은 감사할일이다. 


조건에 비해 늦게 터득한 나보다 이곳에서 스피킹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것은 대단한건데도 말이다.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모임에서 나에게 "스펙이 좋다."라고 표현했으니까. 



사실 나 조차도 내가 그렇게 좋은 스펙을 가졌는지 의구심을 가지는데 말이다. 엄마의 할머니 바지 같은 잠옷 바지에 남동생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똥머리로 묶고 브라도 하지 않고 누운자세로 키보드를 두들기는 내가 한심해 보일때도 가끔 아니 많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아 35세의 첫날, 그닥 큰 변화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