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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Mar 24. 2022

새로 만난 임상심리사 선생님

커피 한잔의 여유가 언제부터 이렇게 값졌을까. 

얼마 전부터 새로운 임상심리사 선생님을 찾아 주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전에 여러분을 만나 뵈었지만 이번엔 뭔가 새로운 해결책을 주고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진단을 내려주는 방식이 그전의 선생님들과는 달라서 새롭다고 할까나. 책상에 앉으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중이 잘되지 않는날이 많아졌다. 


괜시리 엑셀시트를 찾아보며 불안하게 이번달 매출이 얼마인지를 찾아보며 정작 해야 하는 일들을 미루고 고민에만 빠졌다. 


불안장애를 갖고 있으며 스트레스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나는 이런 행복한 시간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내 자신을 혼내지 말것, 선생님의 조언이다. 


 케이트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이런 생각이 필요해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되어야합니다.
그 친구를 케이트님이 싫어한다면 친구를 만나고 싶을까요?



인지상정, 내가 나를 제일 싫어하지 않던가 수도없이 뼈때리는 칼같은 회초리들 


"케이트 게을러, 비디오 에디팅 왜 미뤄? 유투브 관리해야 홍보가 되잖아"

"8년 동안 공부하고 경험 쌓아오면 뭐하니?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벌써 집값이 10억이 넘는데 그 많은 체류 비용 유학비용 왜 쓰고 고생했니? 뭘가지고 있는거야?"

"전문가로서 한 분야가 아닌 여러분야를 경험한 명확하지 커리어를 가진 너를 어떻게 하겠니, 나도 답답하다."

"살은 왜이렇게 불었어, 아프다는건 핑계야 넌 왜 이렇게 식탐이 좋니? 그만먹어"

"왜이렇게 게으르니? 일어나서 운동가, 빨리 허리 부터 나아야지"

"세상에 영어는 8년이나 미국에서 살았으면서, 왜 이거밖에 못하는거야?(실제로 호주악센트 이해못함)"

"80퍼센트까지 대출을 풀어준다는데 집값 또 오르는거 아니야? 갭투자 할 돈도 없다니 정말 한심하다."

"내 나이 35살 너무 많은 나이에 저축한 돈이 너무 없어,"



채찍질을 하면 할 수록 자기 이미지는 안좋아지고, 우울함과 공허함이 커져 혼란만 커지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선생님의 조언이 나에게 정말 와닿았다. 



케이트님은 항상 똑같은 패턴이 있어요. 처음에는 좋아요. 어떤 일이 생겼을때,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을 하다가 회피하며 다시 부정적으로 다른 살들이 붙고 그러다가 결정하지 못하고 혼란만 커지고, 결정을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에요. 한번 결정 했으면 다른 생각하지 말고 딱 마음을 잡으세요.


어떻게 알았지.., 이 선생님 겨우 몇 주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세상에 나를 단번에 파악하다니, 그래 당차 보이는 나지만 사실은 결정 장애이다. 매해 겪는 겨울마다 얼마나 고민을 했던가. 그래 졸업만 하고 귀국하자, 그래 디자인 코스만 끝내고 귀국하자, 그래 영주권만 받고 돌아오자, 한해 한해 미뤄지기만 했고, 매해 커지는 그리움만 가득했다.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다치기전인 19년도에 나를 방문했던 동생과 함께 귀국했을것이다. 그때 또 남의 말을 듣고 고민하다.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티켓값을 환불 받지도 못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정신과 선생님에게 새로운 임상심리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는말을했다. 현재 내가 집에서 지내기에 조울증은 약물치료가 우선이 되어야 하기에 임상심리사를 아직 만나지 말라고 하셨는데, 워낙에 의존적인 성향을 가지다 보니 누구에게 말하면서 고민을 풀어내야 했다. 나를 위해선 선택을 해야했던 상담치료에 의사선생님은 내가 약을 끊을까봐 걱정이 앞서셨나보다.


"의사로서 해주는 이야기야, 이 병은 약으로 안정을 시키는게 제일 중요해, 이건 몸의 문제야. 말을 안해서 그렇지 조울증 가진 사람들 주위에 많아. 예술가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이 병이 많아"




감사한 나의 미적 재능이 떠올랐다. 한때 내 자신을 예술가라고 불렀던때도 있었지, 한때 영재로 불렸던 때도 있었다. 그 많은 가능성들은 이제 여기 그냥 평범한 사람이 마치 세상에서 낙오된것처럼 지방 부모님중에서 요양을하며, 간신히 한그릇을 하기 위해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저번주 찾아간 마취통증의학과 선생님은 디스크가 터지면 3-6개월에 보통 심한 통증이 낫고, 길면 2년이 걸려요, 이미 나는 6개월이 넘었는데도 왜 아직 아플까? 선생님은 명쾌하게 대답했다. 평소에 자세 안좋을때 하죠? 그런것들이 조금씩 쌓여서 그렇게 되는거에요, 지금도 일할 수 있어요 스트레칭 해주고, 자세 바르게 하고 그러면 가능해요. 



왠지 막힌 댐이 풀린 느낌이었다. 



자신있게는 아니지만 최근에 가장 핫한 트렌드 기술을 기반으로한 프로젝트의 상주 프로젝트에 지원을 했고, 이 기술을 지금 올라타야만 한다는 직감이 나에게 말했다. 한국 특유의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안정적인 직장이 우선이 아니라 나름 이분야를 좋아하는 디자이너로서 이걸 배워야 만이 내가 많이 성장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 주위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자마자 사대보험이니 계약직이니 운운하는 소리에 기운이 살짝 빠지긴 했지만 내가 언제 그런말을 듣던가, 동생에게도 한소리를 들었다. 언니 지금 대기업 지원해야 할때인데 한국에선 첫발을 스타트업에 발을 들이면 언니 커리어가 안좋아진다는 훈계에도 귀를 닫았다. 




그날 바로 정말 10년만에 서울에 갔다. 정말 오랜만이다. 나를 도망가게 했던 시절, 강남병 걸려서 150받으며 하루에 기본 9시 퇴근이 일상이던 생활들 아무리 열심히 주말을 반납하며 일해도, 통장아니고 텅장이었던 나의 젊은날들에 질려 도망가게 만들었던 그 도시에 다시 도착했다. 어쩔 수 없는걸까? 고향인 지방도시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결국 왔구나, 



회사의 위치를 파악했다. 여전히 사람은 많고, 차는 더욱이 너무 많다. 저 작은 청계천에 사람들이 빼곡했다. 그나마 좋은 추억이라면 남자친구와 손잡고 광장시장에서 데이트 할때 그때가 정말 좋은 기억이었다. 


20대 때는 그렇게 좋았는데, 다시 30대 중반이 되어서 돌아온 이곳은 너무 북적이고 복잡한 대도시 였다. 울트라 로봇들같은 거대한 건물이 가득한 아시아의 수도(국뽕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이 잔뜩 집어먹고, 고모집에서 신세를 지기 싫었으니까, 머물곳을 도보로 찾아다녔다. 이미 전날 피터팬으로 찾아둔 두군데만 찾아갔다. 여전히 이상한 상가를 개조해서 판매하는 원룸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러들은 알까?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 홍콩도 아닌 이 아시아의 수도에서 이런 집도 아닌 개조한 구조물에서 집이라고 70십만원을 내고 살아야 한다느것을.



다행이 미리 조사를 해둔덕에 2번째 방문한곳이 맘에 들어 계약금을 돌아가서 내겠노라하고 돌아왔다. 사인하고 바로 끝났을 수도 있지만 주 40시간 근무이며 갑 을 과의 합의하에 초과근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추과 근무에 대한 임급지불은 없다. 라는 항목에 계약서 수정을 요청했다. 



이런 조항을 넣은것만으로도 캘리포니아에서는 큰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데, 이 나라는 아직 이런 조항을 쉽게 넣을수 있는 시민 의식이 있구나 하며 헛웃음이 나왔다. 10년 전의 나라면 그들이 제시한 반절의 임금에 이런 조항에도 감사합니다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내일 출근할게요!! 이랬을 텐데, 




여하튼 이렇게 사전 답사를 하고 온날에도 임상심리사 선생님과 대화를 했다. 조언자가 필요했기에, 한껏 공감을 해주며 케이트님 용감한 사람이에요 대단한 사람이에요라며, 힘을 주는 선생님도 좋지만 왠지 이번 시도는 새롭기에, 



걷자 케이트, 뛰지 말고 천천히, 그러다 보면 꿈에 다가갈거니까.  오늘도 좋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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