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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Mar 06. 2022

디스크가 터졌..., 아, 쉬어가는 마침표

달려가다 고꾸라 졌을때,

엄청나게 달려갔다. 하루에 34명 이상의 사람들과 전화 / 스카이프 / 카카오 / 슬랙/ 3개의 이메일 계정 / 문자 / 업워크



자는것도 자는것이 아니었고, 일을 해도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세상에 지불받기로한 대금을 이 핑계 저 핑계 미루며, 주지 않으려고 하는 클라이언트들


회사에 소속되어서 실무를 하는것보다 몇배로 많은 멀티 테스킹 업무에 머리가 터질거 같았다.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외출제한이 시작되고, 외향적인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몸서리치게 공허해졌다.


몇 개월의 병원 출입에도 도대체 알 수 없다는 정도의 소견정도 였고, 그렇게 진단이 늦춰지고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마트에서 2.5키로그람 짜리 쌀 봉지를 들지 못해 울먹거리던떄 서러워서 눈물이 낫고,

척추 주사를 놓으려면 운전 하지 못한다고, 차를 가지고 오지 말라는 병원의 안내에 너무 눈물이 났다.


서러웠다 정말로,  몇주나 걸려 여러 의사를 돌아다니다 결국은 발견한 디스크 파열 진단에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3일만에 귀국을 했다.


사실은 돌아 오지 말았었어야 했다. 비자, 영주권 그 까다로운 절차에 돌아오면 몇배나 까다로워지고,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뒤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사랑하던 매일 따듯한 파란 하늘 아파트의 넓고 아름다운 수영장 재밌는 친구들 내 아름다운 오피스 굴뚝같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


사실 겪어보니 물가 차이도 그닥 많이 나지 않고, 집은 더 작고 비싸고, 돈버는건 더 어렵다.


이게 친구들이 말하던 후회 한다는 말이었나.?


괜찮다고 나를 다독 였었다. 가족이 있으니까 하지만 자주 생기는 갈등과 기대와 못미치는 옛 고향친구들의 관계 이런것들이 나를 조금은 슬프게 만들었다.


나는 댕댕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여러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댕댕이 호랑이 같이 강하게 포효 하거나, 고양이 처럼 혼자 도도하게 삶을 즐기지 못하는 그런 골든리트리버


왜 아직도 내 허리는 제대로 낫지 않는걸까, 벌써 반년이 다되었는데, 아직 누르면 아프고 5시간 이상 앉아있기가 힘들다. 드디어 꿈이었던 태국에서 한달 살기, 유럽 여행 제주도 혼자 살아보기


속모르는 사람들의 왜 못해라고 말하는 소리에 너무 속이 상하고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다.



아프다고, 이게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너를 만나는 3시간이 나에겐 정말 많은 투자라고, 너와 3시간을 앉아있으면 나는 그만큼의 시간을 누워서 일해야 한다고



왜 가족들과 싸우는게 싫다면서도 집에 있냐고, 세탁기에서 빼내야 하는 빨래 조차도 하기 싫다고 바닥에 떨어진 물병 하나 들 수 없다고, 그렇데 어떻게 혼자 살 수있냐고,



그나마 친구인 동생은 실직 한지 오래, 수험 공부를 하는 막내는 아직 수험생 은퇴하고 아직 연금이 나오지 않는 부모님, 막둥이의 미래의 학자금 때문에 싸워대는 부모님들의 소리에, 대한민국의 장녀의 타이틀을 쓴 장녀는 그런 상태에서도 영업을 하고, 누워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 동생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해주고 있다.



나도 사실 쉬고 싶다. 매월 기준이 되는 월급을 만들어야 한다, 낮에는 3시간 정도나 하는 재활치료 운동, 저녁에는 새벽 4시까지나 깨어있으며 진행하는 업무들 (팀의 한명은 영국 한명은 미국에 있기에 정해진 시간이 없다.)


그러다 가족에게 나가는 돈을 보니 헉 소리가 난다. 아 슬퍼 - 언제 돈을 모을까? 이 8년이라는 시간에 일찍 결혼해 영끌해서 집을 산 친구들은 벌써 자신이 10억 가까이 되는데 나는 그들의 100분의 1이라니, 울적하다.


감사하다면 감사해, 이렇게 자유롭게 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서글퍼져 그 비싼 학비와 코로나로 인해 삐끗한 사업에 모았던 자금을 다 털어 넣어 버려 이 35이라는 나이에도 통장에 겨우 2천이 없어 청약을 신청 못한다는게,



행복 한척 즐거운척 할 수도 없다.


둘째가 코로나로 직장을 실직하고, 내가 권유한 프로그래머 과정에서 실패를 하고 자존감이 하락하고 그 이후로 백수로 타지 생활을 하며 엄마에게 생활비를 타다 쓰는게 내 잘못이라고 하는 원망 소리 너무 듣기 싫어 죽을꺼 같아.



돌아오기 전에 그랬는데, 가지 말라고 가봤자 밑바닥에서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밑빠진 독에 물 붙기 같다. 몸은 나아 지고 있지만 그냥 도태 되어버린 삶인거같아서 너무 슬프다.


꿈을 꾸며 살아간다 몸이 다 나아가는 연말 쯤이면 꿈이었던 태국에서 살기라는 로망이 이루어질까?




오늘 아빠를 따라간 병원에서 오랜 친구를 보았다. 중학교 동창 너무 그리워 했던 고향친구들 그들은 나를 잊었겠지만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는데 무시하고 지나가 버렸다. (알아봤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런 작은 것들에 왜 내 유리 멘탈은 흔들리는지, 실패하고 돌아와서 무시 당할까라는 자격 지심이 새록 올라왔다. 이놈의 낮은 자존감,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자, 작은 목표로 쪼개고, 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힘내 케이트, 괜찮아, 남들이 너를 정의하는거 기죽지 말고. 너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실패도 젊으니까 할 수 있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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