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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Apr 01. 2022

새로 시작한 광화문 생활 + 애착인형

케이트님이 만나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내 나이 35 데이트나 연애를 해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MMPI검사지에 샅샅이 조사된 나의 성격적 실마리들은 객관적으로 나의 성격이 어떤지, 도표화 해주었다. 그 점수들을 조합해 풀어주는 상담선생님은 쉽지는 않은 성격이라고 했다. 


만성적인 과민함, 적대감과 분노감이 내제되어있고, 자기 중심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다. 방어기제로 부정을 많이 사용 할 수 있다. 충동성도 높다 현실감각이 결여 되어있었다면 반사회적 성향이 이었을수도, 



많은 나의 트라우마 폭력적인 아버지와 의심이 많고, 과민한 엄마 (동생들은 성격이 나랑 똑같다고 했다) 매우 모든것에 부정적이며 한풀이를 나에게 해댄다. 



착한척 참아 지내던 억압되어있던 어른아이가 공허함에 관심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주는 존재에게 집착하고 질리고 떠날고 그런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는 그의 풀이에 무서울 정도로 맞아 떨어짐을 느꼈다. 


거기다가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진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유리멘탈로 먼 타국에서 버티며 사업까지 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었다. 


그놈의 항생제는 잘 듣지도 않고 가끔 알러지 반응도 보여서 여기저기 자유롭게 병원을 다닐 수 있는 한국이 나에겐 살아 갈 수 있는 곳이랄까? 


와서 보니 의존도도 높고, 자기 혼자 해결 할 수 있는 정서 수치가 낮다. 정서도 많이 불안한편, 


그러면서도 욕심은 많으니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으로 또 광화문 서울에가 두달 계약직을 맡았다. 

일주일도 안되어 허리는 안좋아 졌고, 정형외과에서 처방 받은 약은 잘듣지 않아 신경외과로 달려 갔다. 신경 주사를 맞고, 부작용이었는지 미친듯한 어지러움증에 시달리다. 일찍 퇴근해 다시 병원을 갔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취를 다 했으니 이석증을 의심한다고 내과나 이비인후과를 가라도 했다. 그 사이에 나는 코로나 검사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진료 의뢰서를 써달라고 요구 헀고 그들은 들어 주었다. 


엉덩이에 스테로이드 진통제 하나 더 비타민 비에 진통제를 넣은 링거 한병 9시가 다되어서야 끝이 났고, 미국에서라면 이런 메디칼 서비스는 절대 받을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총 나온 비용은 오늘 이비인후과 검사까지 약 40만원, 미국이었으면 아마 4-500 만원이었겠지, 


주기적으로 들어오던 3프로젝트를 모두 거절하고 풀타임으로 결심하고 들어온 회사는 꽤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아픈 몸이 문제인거지, 



흥미롭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이었으나, 장기간의 약속은 할 수 없었다. 좋게 봐주고 리스펙트를 주는 회사가 고마웠지만, 아직 결핍이 많은 나의 자아는 엄마 옆에서 정서가 아픈 엄마의 돌봄을 받으며 충분히 사랑을 받고 싶었다. 



이러니 데이트니 소개팅도 별로 하고 싶지가 않지, 아빠가 만들어주는 플레인 홈메이드 요거트에 엄마가 과일 잔뜩 쌓아 담아주고, 누워서 노트북으로 일하다가 핸드폰으로 소셜미디아 보고 하던 생활을 하다 


두달 그렇게 올라오고 싶지 않던 서울에서 계약을 하고 근처 호텔을 한달 단위로 계약했다. 복비니, 침구니 샴푸 린스 바디워시 자잘 한거 두달 살기위해서 단기 계약하는 원름 훨씬 나은 조건이었고, 그 붐비는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을 타지 않고 걸어 갈 수 있어서 여러모로 나에겐 편한 조건 이었다. 



다들 그렇듯이 결혼이나 남자친구의 유무는 간단하지만 그들을 알아가기 처음에 하는 질문들이다. 프로페셔널하게 일만 하는 한국이 아니므로, 그래서 대답을 피했다. 혹여나 여기에 인연이 생겨 지방 본가에 내려가고 싶어하지 않게 될까봐, 



정신연령이 낮은 아직 어린 나의 자아는 매일 싸우는 엄마 아빠라도 그들 곁에 있는것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찾았다. 


퇴근하고 바로 남부터미널에서 집근처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계획해두었는데 이 정도 허리로 덜컹 거리는 버스를 타는 것은 무리기에 취소를 했다. 열기운도 있기에 토요일에 하는 귀여운 아이들 과외도 미뤘다. 


휴, 소탐 대실일지도 왠지 뒤쳐져 가고 있다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짧은 기간의 프로젝트를 맡아 올라왔는데 새삼 맘에 든다는게 두렵기도 했다. 


그러면서 상담해주는 선생님은 마음을 열고 다가가라고 했다. 마음을 열고 싶지 않을걸 어떻게해? 


상처 받을 까봐 오들오들 떨지 말라고 다가가라고 했지만 쉬운일은 아니었다. 매번 상처를 받아왔으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막대하고 그럼 정말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된다는 상담사 선생님의 말은 정말 나의 삶을 뒤돌아 보게 했다. 


그 많은 트러블들이 사실은 나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아프고 힘들었던 과거들이 생각이 났다. 그렇다. 이게 학대받은 아동기를 가진 다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이 격는 고통들이다. 



우리는 이겨내기 위해서 상처받았던 세월만큼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 케이트님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돈많은 남자? 아니면 다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는 남자요? "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돈 많은 남자요"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케이트 님은 돈많은 남자가 필요 없어요, 케이트 님은 정서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고 어릴적 채워주지 못했던 욕구를 충족시켜줄 남자를 만나야해요."



내심 알고 있었다. 내가 제일 사랑했던 남자는 내가 망친 관계였지만 가장 행복한 관계였으니까. 망설이며 의심을 품지 않았었고, 마음을 열지 않았엇다.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모질게 하는 나의 비뚤어진 아이가 심술을 내 뱉었었던거겠지



돌아와서도 많은 후회를 한다. 그런 남자를 만났었지만 흥미를 가지지 못했고, 오히려 나에게 홀대 하는 남자들에게 빠졌었다. 그리고 혼자 슬퍼하다 정리를 해버렸지, 




아직도 이년 저년 가시네 라고 나를 부르는 아빠에게 화가 났다. 한마디 했다. 


"아빠, 아빠에게 공주대접 받는 애들이 공주 대접 해주는 남자랑 결혼한대, 나한테 공주라고 불러," 라고 말했다. 



그래 호날두 여친 조지나 처럼, 돈많은 남자랑 연애해서 인생 피는 스토리는 나에게 없다는거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그나마 나이가 들고 엄마 아빠가 사이가 안정적이게 되자 드디어 좀 나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약간은 그 어릴때 못느꼈던 안정감을 찾았다. 방치되고 제대로 돌봄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 



선생님이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애착인형을 키우라고 했다 애정을 많이 주고, 대화를 많이 하라고, 나는 기본적으로 외로움과 공허함 결핍이 많은 그런 여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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