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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Apr 13. 2022

Epic games 팀원이 되었다는 그녀

내 자랑스러운 친구이자 동생 

6살 아래이고, 내가 첫 미국 생활을 시작했을때 교회 소모임으로 만났다. 

여러 어려움으로 함께 울기도 했고, 가장 초반기 적응 못했을때의 생활을 함께해서 애착이 가는 친구였다. 



나는 영주권이 없기 때문에, 어느 회사에 소속이 되어 워킹비자를 가지고 일을 하거나 학교를 다녀야 하는 학생비자를 유지해야했고, 그녀는 가족이민을 오래전에 신청했었고, 만 21세 미만이라 가족중에 유일하게 영주권이 나와 미대 재수를 중단하고 미국에 건너온 케이스였다. 



착했고, 유머있었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며 찾아다니던 아이였다. 할머니의 말대로 약국에서 심부름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따 약국에서 일하며 약사를 잠깐 꿈꾸다, 아 역시 나는 미술이구나 나라고 생각했다고 헀다. 



나보다 한참은 어리지만 내가 잘하고 원하는걸 알고 그걸위해 남의 눈치 안보고 진격해 나갈수 있는 그런 신념이 보고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학생 신분이면서도 나는 낮에는 조금씩 일을 하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번뇌에 빠졌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왜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난 왜 이런 대접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거지? 



그렇게 고민하며 에너지를 낭비할 시간에 그녀 처럼 강단있는 선택을 했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한국 사람이 없는 산타바바라에 거주지를 옮기고 일본식 라면집에 더듬거리는 영어로 직장을 잡고, 산타바바라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한 두 수업씩 영어 수업을 등록하고, 외국애들만 사는 쉐어하우스 같은 저렴한 방을 거처로 삼았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영주권이 있어서, 학교나 회사에 매여있지 않았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그 영주권과 영어라는 틀때문에 같혀서 혼자 슬퍼하고 고민만 하고 있었던걸까? 



이 후에 잠깐 만난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의 아트스쿨에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잘 만나지도 못했다. 보통 1-2학년은 교양과 본과 과정은 약간 3-4학년은 본과 과정을 듣는데 그녀는 반대로 했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랑은 절대로 안친해 지고 특히 유학생들과는 거리를 둔다고 했다. 아는척하면서 끼리끼리 놀러 다니는걸 피한다고 헀다던가? 보통 정보 교환등을 하려면 같은 인종끼리 뭉치곤 한다는데 그녀의 설명에 아 그러니 하고 말았다. 



포트폴리오가 중요하기에 저학년때 상급생 과정을 듣고 3-4학년때 교양같은 널널한 과정을 하며 포트폴리오를 한다는 그녀, 마지막 학기 나에게 보내온 그녀의 소식은 그녀의 학교 웹사이트 메인에 그녀의 작품이 실렸다는 말이었고 그 이후 정말 좋은 회사에서 인터뷰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워낙 내가 게임이나 에니메이션쪽은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그녀의 설명으로는 블리자드급이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그녀의 성공포인트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꾸준한 노력 아닐까? 



가끔 연락하면 하루종일 포트폴리오만 한다는 그녀 그 긴 시간을 집중해서 그렇게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집중도가 대단하다. 내가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못간건 내가 영주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녀 처럼 꾸준히 오랜시간 공을 들여 포트폴리오를 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외롭다며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하는 그 시간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공들여 했었다면 아직 실리콘 벨리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귀국이냐 영주권이냐 수도 없이 고민만 하고, 영주권스폰을 받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잡혀있는듯한 굴레감에 괴로워하며, 가족이 보고 싶다고 신세한탄만 수없이 하며 외로움만 탔었는데 말이다. (보통 영주권으로 회사에 잡혀 있는 경우에는 온갖 잡일과 빨리빨리 하라는 압박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제대로된 포폴을 쌓을 프로젝트도 많이 없을지도.)




모든것은 어떻게 프레임을 잡냐가 아닐까? 



물론 내가 그녀보다 6살이 더 많지만 정말 배울점이 많은 친구다. 




니가 열심히 한걸 내가 알기에 정말 축하하고, 10년후엔 creative director그리고 아름다운 가정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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