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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Apr 13. 2022

스타트업 출근 한지 2주째

코로나 걸렸어요! 

귀국 하고 쭉 재택만 고집해왔었다. 본가 고향에 오랬동안 그리워했었던 가족들과도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쉬엄 쉬엄 재활치료를 위해서 PT수업도 받고 수영도 하고, 사람들이 다 출근해서 한적한 시간대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여유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러다 문뜩 사람들이 그리워질때가 왔다. 사람들 착하기도 하지 크몽 말고 다른곳을 찾아보았다. "위시켓" 크몽에서 들어오는 일들은 규모가 작은게 대부분이었는데 위시캣은 약간 규모가 크거나 상주해야 하는 포지션이 많았다. 


2달의 프로젝트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정도면 날씨도 좋은 이 봄에 기분 좋게 서울갔다올만 하겠다." 


35살 짜리 딸을 5살 취급하는 우리 오마니에게 서울행 이틀전에 고백했다. 


"엄마 나 서울가 두달동안"


가기전에 동네 마취통증의학과 선생님 찾아가서 일해도 되곘냐고 걱정스런 질문 한바가지, PT선생님도 찾아가서 질문한바가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사실 출근한지 4일째 의자에 앉은채로 종이를 집다가 디스크가 조금 상처가 났는지 오랜만에 묵직한 고통이 몰려왔다. 죄송하다며 마치 감기걸려 잠깐 병원에 가는것처럼 회사 앞 신경 외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점심 이 후부터 처음 겪는 회오라기 같은 어지럼증.., 퇴근은 6시 반이지만 6시에 먼저 퇴근한다고 하고 다시 그 병원을 찾아갔다. 링겔을 맞고 진통제를 더 맞고, 


이유를 못찾겠으니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것을 했다며, 이석증일 수 있으니 이비인 후과나 내과를 찾아가 보라는 선생님말에 PCR테스트라도 무료로 받아 볼 수 있게 진료의뢰서를 써달라고 했다.


금요일 아침 부터 이비인 후과 가서 신속항원검사 -> 이석증 검사 -> 종로구청앞 pcr테스트까지 완료 하고나니 세상에 하루가 다갔다. 출근 첫 주만에 골골 거리다니 회사에 너무 미안했다. 


스테로이드를 맞은 허리가 아직 온전치 않아 본가엔 내려가지 못했고 토요일 반나절 회사에 나가 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살짝 하였다. (사실 미안해서 얼굴비추러감)


이 회사 대표님들은 연구원 출신들이라 그런가.., 엘에이의 그 모두 스트레스 받아있는 그런 모습들이 아니다.

(이민자들 특유의 세상에 찌듬을 언젠간 나열해 써보리라)


그리고 다행이 음성 판정이 나고 한주가 더지나고, 동생 상견례가 있어 본가에 내려왔다. 나의 경우엔 목에 통증이 없어서 혹시나 몰라 신속항원검사를하니...  세상에 양성! 


그날 새벽 그 흔치 않다는 호홉곤란이 와서 응급실에 갔다가 병실을 기다리는데, 너무 열악한 코로나 환자 입원 대기실의 환경에 퇴원 하고 집에 왔다. 아침 일찍 병원에 있는줄 알고 전화를 했는데 방에서 울리는 내 핸드폰 소리에 부모님께 잔뜩 혼나고, 보건소에서 코로나 병동이 있는 병원으로 보내주어 입원을 했다. 


만약에 내가 미국 회사에 다니다가 이런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모두다 회사 규정이 어떻게 되는지 부터 알아 보았을것이다. 여러 고용 형태가 있듯이, 형태마다 병가의 규모도 다르고 내가 다닌 기간에 따라서도 다르다. 


아마 현재 나같은 2달 단기 계약직에게 쿨하게 케이트님 응급실 가셨다는말 들었습니다. 걱정하지마시고 푹 쉬시고 뵈요. 라고 대표님이 말을 했을까? 거기다 미친듯이 빠르게 돌아가는 스타트업에서? 


아마 이런 경우에 회사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유급 휴가는 정말로 흔치 않은 케이스 였으리라, UNPAID로 쉬고 복직하게 해주고 건강보험만 유지해줬어도 아 땡큐베리감사! 이랬을텐데, 


세상에 1급 감염병이라며 관련 병원비는 전부 무료라니, 119 구급차에 타고 응급실 콤보 거기다 입원까지.. 미국이었어봐. 집으로 천만원 짜리 빌링이 날아왔을텐데, 


보험마다 조건도 다르고 사용 가능한 병원도 달라서 운이 나빠 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병원을 갔다거나, 질병이나 검사마다 보장해주는 금액도 다르다. 


내가 미국에서 첫 응급실에 갔을때 생명이 위급한 질병이 아니었다며, 총 5천불의 고지서에서 의료보험회사에서는 겨우 반절만 내주었다. 거기다 내 주소를 잘못 써놔서 나머지 고지서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에 몇 년 후에 내 신용기록에서 2500불의 잔금이 34백불로 불어있었다. (영어도 못했고, 고지서를 받지도 못해서 그런 상태였는지 정말 몰랐다...., )


왜 쓰는 글마다 마무리는 한국 의료보험 시스템에 대한 찬사지...? 여하튼.., 국뽕 절대 아니고.., 대한민국은 나같은 골골한 사람이 살기는 정말 최고인 나라다.., 



여하튼, 2주간 출근한 스타트업에서 딱 2달만 일하고 내려오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정이 들려고 한다. 마음 약한 나에게 안된다 안된다 말은 하고 있지만, 내 부사수인 주니어 디자이너의 "케이트님 저는 이런 개자이너가 되고싶어요!" 라고 꿈을 말하는 꼬맹이에게 흠뻑 정이 가버렸다. 


ESTJ이자 핫한 K뷰티의 세계를 가르쳐주는 나같은 K장녀인 스윗한 그녀에게도, 



두달의 서울 여행의 시작이 걱정,설렘,고민,미안함..,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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