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monkeystar Jul 24. 2022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그 마음가짐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 

다시 내 가족이 사는 도시에 돌아왔다. 멀리 서울에서 부터 2시간 반, 그 이후로 친구들과 오히려 더 돈독해졌다. 그리고 또 나의 뜻이 공고해 졌다. 다시는 복잡한 강남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확고 해졌다. 


모든 길은 붐볐고 단 한줌의 녹음도 마실 수 없었다. 강남역에서 신논현역으로 가는길이면 앞으로 빨리 가지도 뒷걸음 치지도 못하게 사람들은 빠르게 군대 같은 행렬로 걸어갔다. 


골목 골목 술집이 잔뜩 저녁이면 시끄러운것도 싫었고, 한참이나 길을 서야 뭐든 할 수 있다는 것과, 일상으로 지쳐 귀가 하려는 사람들이 몇백미터나 서있는 줄도 보고 싶지 않았다. 


"테헤란로" 우리 나라 많은 좋은 기업들이 있다고, 그 주소에 있다는것이 뭔가의 대단한 티아라 같이 느껴질 수 도 있겠지만 나는 한참이나 기다려야 올라갈 수 있는 엘레베이터도 싫었고, 건물 로비에 들어갈때마다 마시게 되는 담배 냄세도 싫었다. 


이렇게 부정적이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집 내 방에서 보이는 저 마운틴 뷰와 조용함 물과 풀의 냄세 한적한 거리 집앞 공원을 걸을때마다 느껴지는 오롯이 묵직한 에너지 나는 이곳에 있는것이 행복했다. 


물론 이 동네도 싸지 않아서 4억은 있어야 그나마 괜찮은 집을 구 할 수 있었다. 지방 아파트도 이 정도인데 서울 집값은 감당도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월 500을 버나 지방도시에서 250을 버나 나는 그 삶의 질은 비슷하다고 본다. 그래서 물색한 또 나의 다음 커리어.., 


관광 통역사 과정을 생각도 없이 질렀고 공부할 생각은 없다. 또 스파르타에서 하는 PM과정을 신청을 했고, 또 집 근처에 학원에서 티칭 어시스턴트 자리를 잡았다. 5시간을 일하고 안정적으로 4대 보험을 해주는 직장이라니 스트레스도 없고, 내 시간도 적절히 쓸 수 있으니 안성 맞춤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내 머릿속은 이 지방의 도시에서 아파트 청약을 준비하는것으로 머릿속에 가득찼다. 아무리 엄마가 이곳은 인구가 주는데 뭐하러 여기서 아파트를 사려고 하냐 작은 오피스텔이라도 서울에서 사는것이 낫다고 아무리 잔소리 잔소리를 해도 나는 별로 들리지 않았다. 


내가 결혼에 성공할지 안할지 모르겠지만 혼자라면 지금 집을 작은것이라도 해놓고 잔뜩 거의 모든 수입을 연금에 붓는것이 내 생각엔 논리적이었으니까. 


IRP, 노란우산, 국민연금 할 수 있는 만큼의 모든 연금을 하면, 내가 퇴직 했을때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적절히 살아갈 수 있을까? 큰 부자가 된다거나 유명해진다거나 이런건 원하지 않는다. 


그 화려한 도시에서도 살아 봤고, 그 멋진 아파트에서도 정말 좋은 차도 타봤지만 그 흔들리는 외로움과 불안함은 나를 언제나 슬프게 만들었다. 내가 가진 모든것을 부정하듯 우연히 와버린 이 곳에서 나는 어느때보다도 평온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내 작은 공간에서 마음껏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치고, 원하는 만큼 잔뜩 책도 읽고, 몇명의 아이들에게 숙제를 봐주고 살아가고 싶을 뿐이니까. 큰 꿈을 꾸는 그런 삶은 이제는 나에게는 20대의 열정이였다. 



오늘본 학원 잡인터뷰에서 나는 정말 솔직하게 말해 버렸다. 이상하게 영어라는 언어는 단도직입적으로 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말해 버린다. 


나의 다년간의 마케팅과 디자인 커리어에서 그는 걱정을 했다. 지루해서 금방 그만 두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당연하다 회사를 운영하고 서울에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나에게 초등학생이 대부분인 영어 학원에서의 티칭 잡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테니까. 



나 내 일에 재능있고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내 삶을 어디서 꾸리고 싶냐는것도 한 부분이다. 이렇게 리모트로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좋지만 정말 얼만 큼이나 내 커리어를 유지 할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나는 궁금하다. 아마 10년? 내 나이 벌써 35세 이 필드에서는 45이면 다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그렇듯이 그 필드에 jumping in 해버렸다. 어떤 교육도 실제로 그 필드에서 이해보지 않으면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 잘맞는지 내가 좋아하는지 알 수있으니까. 


문뜩 글을 쓰다 보이는 저 뉴욕의 멋진 콘도에서 사는 삶은 이젠 내 삶이 아니라는걸 깨달아 버렸다. 슬픔일까 아니면 포기를 했던걸까. 나는 내 합리화를 하는 걸까. 아직 나에게 솔직하지 않은걸까? 



아마 10년 후 쯤 내가 낳은 아이를 데리고 저기로 가서 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갈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아니다. 나에게도 쉼이라는게 필요하니까. 그리고 내 20년 후의 커리어를 쌓아야 할 시간이니까. 



감사하게도 이 나라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그렇게 욕하는 정부정책이 아직 청년으로 간주되는 내 나이에서는 감사한일뿐이다. 



그래 오늘도 걷자 천천히,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자책하지도 말고, 후회하지도 말고, 그저 주어진일을 천천히 




작가의 이전글 35세 미혼, 일보다 사랑이 더 어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