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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monkeystar Jul 06. 2022

35세 미혼, 일보다 사랑이 더 어렵다.

남들 다 하는 가정과 연애 우리는 왜 고민에 빠지는가. 

세 여자가 한자리에 앉았다. 


외국계 제약회사를 다니는 결혼 2년차 36세, 34세의 변호사 그리고 나, 

나름 우리는 커리어적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나도 나름 이 자유로운 생활이 좋았고, 그들도 어렸던 20대 치열한 삶과 달리 여유있는 삶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여자들 앉으면 자기 남자이야기에 바쁘다. 얼마전 난 또 사랑에 실패했다. 사랑에도 완급 조절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내가 먼저 사랑에 빠져버린것이다. 


세상의 조건 때문에 너무 사랑하지만 결혼을 할 수 없는 나의 친구이야기를 한참이나 듣다가, 막상 결혼하기 딱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한 언니의 말을 듣고 있자니, 결국엔 우리는 셋다 서로의 연애,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전 헤어진 그 남자의 말에 따르면 남자들 사이에서 현 와이프 또는 여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서로 찐따라고 느낀다고 한단다. 왜 우리 금성에서온 여자들과 남자들은 이렇게 다를까? 


후덥지근한 날씨탓, 홀로 재택 근무를 하다 외로워진 우리들이 사람구경이 하고 싶어 잠깐 찾은 도서관에서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열어보게 되었다. 그가 프랑스인이라서 그렇게 sweet한 말을 써내려 갈 수 있었을까, 왜 그 사랑하는 상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는지 관계에서의 미로같은 감정과 상황을 묘사한 글들에서 그에게 느낄 수 없었던 내안의 결핍감을 느꼈다. 


서로 매우 바쁜 그와 나 겨우 잠깐 몇 시간 짬짬이 시간을 내어 만났고, 우리의 사랑의 언어는 너무도 달랐다. 급하게 그의 본론에 도달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정말 예쁘네 자기, 사랑해" (your so beautiful today baby, i love you) 라는 말이 그 남자에게 어려운 걸까. 한국 남자에게 어려운걸까? 


언제나 나는 "토종 한국 사람이야, 그것도 지방 출신의 고리타분하고 고집센 여자"라고 나를 정의해서 인지 마음이 아팠다. 만남의 초반기부터 바쁜 자신을 이해해줄수 있는 여자친구를 원한다는 그의 말에 난 내가 괜찮을줄 알았다. 9-6의 단기 상주를 하며, 캘리포니아에 있는 내 회사일을 유지하고 있고, 거기다 한국에서도 간간히 프리랜스 외주, 주말마다 본가로 내려가 하는 과외 총 4잡을 뛰고 있었고, 서로 바쁘기에 이해 할 수 있다 생각했다. 


회사가 광화문에서 강남으로 이사를 하고, 


아직 디스크가 온전히 낫지 않은 나는 이미 대부분의 짐을 택배로 본가로 보냈고 겨우 캐리어 두개의 짐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이 통증을 호소 하고 있었다. 마지막 바로 전의 만남에서 그가 아픈나의 이삿짐의 지퍼도 잠가 주지 않았을때 나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결핍이 서운해 폭할한 트리거가 되었다. 조용히 화를 냈지만 전혀 못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1주일 후 회사를 그만 두었다. 미리 똘똘한 팀원에게 인수인계를 할 필요 없을 정도로 입이 닳도록 설명을 해놓은 덕에 나는 회사에 누를 끼치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나올 수 있었다. 


서울의 상주해야 하는 회사를 하차 하며 문뜩 이성적인 계산이 생겼다. 그 많은 스케쥴중에 그가 있었고, 이제 굳이 내가 서울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없는것이다. 하지만 그 두달간의 만남에서 나는 사랑에 빠져있었고, 다시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를 만들어 내야 했었다. 


정말로 간절하게 대화하고 싶었다.


23시 저녁, 미국이였다면 연인간 매일 하는 통화가 이상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런게 일상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문득 통화가 하고 싶어졌다. 


나 카톡: "오빠 통화 할 수있어?"

그 카톡:"한가해 지면"

나 카톡: "언제 시간 낼 수 있어?"

그 카톡:"모르지ㅜ"


항상 반복되는 상황, 그는 모르지만 감성 가득한 나는 펑펑 울었다. 나는 상의하고 싶었다. 대화를 하고 싶었다. 진통제를 허리 인대에 맞을 만큼 아픈 현재 혼자 호텔 방에서 짐을 정리하다. 더 통증을 느꼈고, 누군가 와서 짐푸는걸 도와 줬으면 했다. 본가에 내려가서 치료를 받고,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이해를 요청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감정이 어떤지도 알고 싶었다. 결국은 기다리다 못해 나는 카톡으로 괜찮은듯 우회적으로 경고를 했다.


카톡으로 통보했다.


"오빠 미안한데, 지금 국가과제로 받은 일이 바빠서 이번주는 못만날꺼같아. 정말 미안해"


그리고 몇일 뒤,


"오빠 마음의 준비해 장거리 연애를 할 준비, 다시 서울에 job을 구할때까지 2-3주 2-3달 걸릴지 몰라"



사실은 우회적으로 그에게 이별을 고한 것이었다. 사실은 많이 좋아하고 있었음에도, 날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던 그는 내가 한말에 진실을 알지도 대화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바쁜 스케쥴에 짬짬히 보내던 그의 카톡은 이제 오지 않는다. 한바탕 카톡으로 뿜어대며 싸웠고,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만나기로 한날 그는 오지 않았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하루 뒤 후회한 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가장 뒤끝없는이별 다시는 연락 오지 않을 이별이다.



이 감정의 온도차에 지칠 사람은 나뿐임을 견론 내렸으니까. 그 어떤 이별도 가슴아프다. 하지만 다음의 사랑도 반드시 올거라 믿어야만 한다. 



"큰누나 매년 큰누나가 만날 수 있는 남자의 수는 줄거야, 눈을 조금만 낮추고 착한척 제발 3달만 해라" 라는 막둥이의 말에 동요 없던 나는 이젠 동공이 흔들린다.



일이란 하다 보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는다. 실패 또 실패 그리고 포기 끝에 잊을만 하면 보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사랑이란 단어엔 실패만 하는 사람일까. 


헤어졌다는 말에 당장 전화 오는 나의 절친 


"케이트야 그 새끼는 원래 느낌이 쎄했어, 당장 번호 지우고 카톡 차단해, 기다리다 보면 그런 사람이 와 만나면 만날 수록 확신이 드는 그런 사람 너도 찾아 다니지 말고 니가 좋은 사람이 되어있으면 그런 사람을 만나게되 그리고 알 수 있어"



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하고 사랑에 빠지고, 비혼주의라던 나의 친구에게 나쁜 남자도 어느덧 보면 카톡에 커플 사진을 올리며 결혼을 약속한다. 그 비합리적인 제도를 합리화 하겠다고, 이성을 거스르고 나는 이 사람을 평생 사랑을 할 자신이 있다고 서약을 하는것이다.



그 과정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 매일 드는 확신 왜 주위엔 초등학생 자녀들을 키우느라 바쁜 친구들이 가득한데 나는 이런 기본적인걸 해내지 못하나, 불안함과 회피 성향이 강한 근본적인 문제를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내 자신을 또 의심했다. 



또 마음을 달랜다. 그 어떤 이별도 아프지만 첫 사랑이 아니기에 그 느끼는 고통은 더 작아질거라고. 옷장 한가득 내 스타일도 아닌 그를 만나기 위해 샀던 드레스들, 구두들 내가 내가 아닌 옷을 입을만큼 내 자신일 수 없었기에 이번 사랑도 실패하지 않았을까 미국 여자같은 생각을 하다가. 



명품이라곤 하나도 없는 내 옷장을 바라봤다. 그래, 나라는 여자 물욕도 없고, 일만 벌리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또 찾아올것이고, 그 중에서 또 사랑할 사람을 찾을 수 있으리라 위로했다. 



다음엔 이런 나의 찌질한 패턴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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