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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쌩긋 Jul 06. 2017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력의 보편타당성을 따지기 전에.

누군가에게는 스펙쌓기조차 사치라는 것을 당신들은 알까?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계획을 발표했다. 일단 반가운 행보다.

그러나 이 정규직화의 내용도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말만 정규직으로 바꿔주고 실질 임금은 그대로인 이름뿐인 정규직화는 아닐지, 당사자들은 조마조마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말하는 글이나 기사에 꼭 달리는 댓글들이 있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공평하게 다 내쫓고 시험봐서 다시 뽑죠!

라는 공정함을 가장한 비난.

사실 불평등과 기회의 박탈이 문제라면 경제적 자원을 독점한 재벌을 가장 많이 비난해야 마땅하다.

경제가 어렵다는데도 재벌 일가는 매년 수백억에 이르는 주식 배당금을 꼬박꼬박 챙긴다. 정규직까지 포함한 한국 노동자 4명 가운데 3명은 평균 연봉이 4000만원도 안 되는데 말이다.

이런 재벌 일가야말로 청년들의 공적 1호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사람들의 증오는 압도적인 부나 권력을 가진 이가 아니라 자신과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혜택을 누린다고 여겨지는 이에게 향한다.

증오는 사회 구조를 지배하는 숨은 권력이 아니라 자기에게 가까이 있고 눈에 보이는 대상, 적당히 약한 자에게 몰린다. 이것은 길 잃은 분노다.(기본 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오준호, 개마고원, 2017)




취업하지 못해 졸업을 유예하는 대학생들이 있다.

그리고 졸업 유예 같은 건 생각도 못하고 130만원짜리 비정규직으로라도 취업해야하는

저소득층 청년들이 있다.

더  아래로는 비정규직 취업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고졸 청년들이 있다.


저학력 중장년층 구직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것은 마찬가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스펙트럼이 너무나 다양하지만 그나마 사기업보다 일찍 끝난다, 혹은 임금 지급일이 일정하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버텨왔다. 물론 '버티는 삶'을 결결이 들여다보면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이 시대를 살아내는 여느 비정규직들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는 것은 이들의 삶을 최소한의 정상적인 궤도로 올려놓는다는 의미이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생활에서 이제 한 달 벌어 한 달도 살고 저축도 조금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한다'며 반대한다면,

이들의 인생을 영원히 비정규직의 굴레에 가둬두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는 것일까?



목표를 가지고 쪽잠을 자며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무가치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차별과 저임금을 감내하며 살아온 이들의 시간이,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유예한 이들의 삶보다 하잘 것 없다고 저평가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어느 누가 감히 한 인간의 밥줄 앞에

짧게는 비정규직과 장기 취준생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아 내몰린 청년노동자에게,

  길게는 곧 정년 퇴직을 바라보는 늙은 노동자에게,

공평을 말하고 자격을 운운하며

지금까지의 과정은 평등하지 않았으니 이제까지 당신들이 일해온 시간들은 무효라고, 짐 챙겨 모두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공정한 과정을 거쳐 다시 뽑겠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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