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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쌩긋 Oct 30. 2015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구스노키 시게노리


나는 만날 혼나.
집에서도 혼나고 학교에서도 혼나.

엄마는 일하다 가끔 늦게 와. 그럴 때, 나는 동생이랑 놀아 줘.
하지만 내 동생은 나랑 놀 때면 꼭 떼를 써.
"이런 엉터리 종이접기는 싫어! 엄마처럼 예쁘게 접어 달라고!"
"시끄러! 오빠한테 대들래!"

내가 화를 내면 동생은 바로 울어 버려.
그리고 엄마가 올 때까지 계속 울어.
어떨 떄는 울음을 그쳤다가도
엄마가 오면 다시 울기 시작해.

동생이 운 날이면 나는 꼭 엄마한테 혼나.
"또 동생을 울렸구나!"
(동생이 먼저 떼를 쓰니까 그렇지.)
"아직 숙제도 안 했어?"
(동생이랑 놀아 주느라 못 했단 말이야.)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더 많이 화를 낼 게 뻔해.
그래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려 버려.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대꾸도 않고 혼나기만 해.
에잇, 나는 만날 혼나.

나는 학교에서도 만날 혼나.
오늘 쉬는 시간에 마사오와 다케시가
축구를 하면서 나를 끼워 주지 않는 거야.
그래서 내가 물었지.
"나는 왜 안 끼워 줘?"
그랬더니 이러잖아.
"넌 규칙도 모르고 네 멋대로만 하니까 끼워 줄 수 없어."
나는 약이 잔뜩 올라서 말했어.
"아아, 그러세요? 나야말로 너희가 놀아달라고 사정해도 같이 안 놀 거야!"
그러고는 마사오를 발로 뻥 차고 다케시에게 주먹을 한 방 먹였지.
그랬더니 둘이 으앙 울음을 터뜨리잖아.

선생님이 달려오더니 나만 혼냈어.
"또야?"
(쟤네 둘이 먼저 약 올렸단 말이에요.)
"친구를 때리면 못써!"
(하지만 쟤들이 먼저 '끼워줄 수 없어.'라고 했어요. 그건 내 마음을 때린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그런데 내가 뭐라고 대꾸하면 선생님은 더 많이 화를 낼 게 뻔해.
그래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려 버려.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대꾸도 않고 혼나기만 해.
에잇, 나는 만날 혼나.

어제도 혼났고....
오늘도 혼나고....
틀림없이 내일도 혼나겠지...
나는 정말 '참 착하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어.
그런데 엄마도 선생님도 나를 보면 늘 화난 얼굴이야.

"엄마, 그렇게 화내면 얼굴에 주름 생겨."
며칠 전에 엄마한테 그렇게 말했다가 또 혼났어.
나는 엄마가 언제나 예뻤으면 해서 한 말이었는데.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또 혼났어.
"좀 조용히 해!"
입학식 때는 '목소리도 크고 무척 씩씩하구나.'라고 했으면서.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칭찬 받을 수 있을까?
나는......... '나쁜 아이'일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얼마나 좋았는데.
1학년에 돼서 얼마나 신났는데.

칠월 칠석 날에 우리 반 모두 쪽지에 소원을 적었어.
마사오와 다케시는 '축구 선수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쓰고
도모에는 '피아노를 잘 치게 해 주세요.'라고 썼어.
나는 곰곰이 생각했어.
내가 정말로 바라는 건 뭘까?
"빨리 안 쓰고 뭐하니!"
골똘이 생각하다가 선생님에게 또 혼났어.

나는 학교에 들어와서 배운 글자로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원을 적었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썼지.

다 쓰고 보니 또 내가 맨 꼴찌였어.
(아, 또 혼나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선생님에게 소원 쪽지를 냈어.
선생님은 물끄러미 쪽지를 보았어.
한참동안 뚫어져라 내 소원만 보고 있었어.

선생님이 울고 있지 뭐야.
"선생님이.... 늘 혼내기만 했구나. 미안해. 참 잘 썼네. 정말 좋은 소원이구나."
선생님이 칭찬을 하다니! 나는 깜짝 놀랐어. 이렇게 빨리 소원이 이루어질 줄이야.

그날 밤, 선생님이 우리 집에 전화를 했어.
엄마는 선생님과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지.
전화를 끊고, 엄마는 언제나 동생을 안아 주듯이 나를 안아 주었어.
"미안해 엄마가 혼내기만 했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꼭 안아주었어.

동생이 부러운 듯 쳐다보잖아.
그래서 내가 동생을 안아 주었어.
"너희 둘 다 엄마한테는 보물이란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한참동안 안아 주었어.

하느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오늘 하늘만큼 땅만큼 행복합니다. 앞으로 더 착한 아이가 되겠습니다.


정규(가명)가 생각나서 한참을 눈시울을 붉혔다.

그 아이만 도서실에 입장하면 그 순간부터 소란이 끊기지 않아서

내심 1년 반째 연체한 책을 그냥 반납하지 않기를 바랐고

조금만 문제를 일으켜도 내게 퇴실 조치를 당했던 그 아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나 하고싶은 말이 많을까.

나의 부족이 또한번 아이에게 생채기를 내고 만 상황을 앞으로 나는 또 얼마나 뒤늦게야 깨닫고 후회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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