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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쌩긋 Dec 08. 2015

인간이 변할 수 있을거라는 거룩한 믿음

<워킹데드> 6-8에 부쳐

사람은 최대 3퍼센트 변해.

그사람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뀔 리는 거의 없으니 타인에게 괜한 기대하며 실망을 쌓아가지 말라는 동기의 충고였다.

이 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혼란스럽게 하며 끊임없이 고민하게 한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가. 그것이 소위 "긍정적인" 방향으로라면 더욱더 요원한 일인가.



뭐가 옳은건지 모르겠소. 내심으로는 나도 침입자들을 죽이고 싶었기 때문에 말이오. 그들이 했던 짓들을 보았소. 그리고 내가 끝낼 수도 있었소. 허나, 사람이 변할 수 있을 것 또한 알고 있소.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이오. 그 생각은 날 변화시켰소. 날 돌려놓았고 내가 계속 살 수 있게 해 주었소.


당장 다음 순간 살아있을지 죽을지 모르는 세상 종말의 위기에 선 모건의 외침은 너무나 유토피아적이어서 공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현실주의자는 거창한 혁명의 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삶 한순간 한순간이 혁명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더욱이 인간은 유동적인 존재다. 애초에 그 가정이 없다면 교육이나 교화란 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또 완벽하게 변할 수는 없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이 어떤 며칠은 운동도 하고 식이 요법도 잘 수행했다가 또 어떤 날은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면 되지 하고 망치기도 하지 않나. 그러나 처음의 그 결심이 없었다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선한 의지는 좋아졌다가 나빠지고 나빠졌다가 좋아진다. 교육이나 교화로 인해 다섯 번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아무 죄책감이 없던 사람이 그래도 한 번 쯤은 후회를 하고, 그러다가 다섯 번이 네 번이 되고 네 번이 세 번이 된다면 그 미미한 변화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 효율성을 따진다면, 사실 다른 모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도 빛을 잃게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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