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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Feb 22. 2020

'아버지 없는 사람 손 들어'

가정환경조사서의 잔혹사 

내가 중. 고교를 다니던 1970년 대에는 학년 초에 ‘가정환경조사’라는 걸 했다. 아마도 학생 개개인의 처한 상황이나 문제점을 파악해서 학생지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려는 목적이었을지 모르지만 학생 중심의 조사가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을 파악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가정환경조사의 골자는 부모님의 학력, 직업, 직책과 주거상황이 자가. 전세. 월세 또는 친척집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수 십 가지의 살림살이를 나열해 놓고 집에 있는 물건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이었다.


환경조사서에 나열된 살림살이에는 피아노, 승용차, 티브이, 라디오, 전화기, 냉장고, 세탁기, 전축, 전기다리미 등이 있었는데 상당히 소소한 살림살이까지 적혀있어 냄비나 프라이팬은 왜 빠졌나 싶었다.


나는 이런 가정환경조사서를 적는 일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부모님은 일본에서 공부하셨고 작지만 아담한 '자가' 이층 집에서 살았고 피아노나 승용차는 없었지만 티브이, 냉장고, 세탁기, 전화기, 전축 등 동그라미 칠 살림살이도 꽤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 가정환경조사서의 잔혹사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시작되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밤, 아버지는 고혈압으로 쓰러지셨고 병원 엠블런스에 실려 가셨는데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간병인이 흔치 않았고 나를 제외한 식구들이 이불 보따리를  싸가지고 병원에 가서 밤샘 교대를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너무나 생생한 이상한 꿈을 꿨다.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갑자기 양손 가득히 내 이빨이 몽땅 빠져버리는 흉측한 꿈이었다. 그다음 날 이른 아침 언니들이 병원으로 싸가지고 갔던 이불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나와 작별의 시간도 없이 그렇게 바람같이 떠나셨다. 웹사이트 꿈해몽에 '이빨 빠진 꿈'을 찾아보면 '가족 또는 가까운 사람이 죽는 꿈'이라고 나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빨 빠지는 꿈을 꿀까 봐 벌벌 떤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또다시 가정환경조사서를 받았다. 편지지만 한 누런 시험지 종이가 내게는 돌덩이 같았다. 구겨버리거나 어느 구석에 처박아 놓고 싶었다. 가족상황에 아버지 '사망'이라고 적으면서 내 가정환경조사서는 반쪽이 되어버렸다.  집에 가재도구는 남아있으나 지붕이 날아간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내 가정환경조사서를 누가 볼까 봐 조심히 제출하고 '이제 신고는 끝났구나'라고 안심했다.  


그런데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교실에서 '손 들기' 가정환경조사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한 반에 65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손으로 일일이 통계 내기가 번거로우니까 각 항목별 '손 들기'를 시킨 것 같다. 그런데 숨 막히는 일이 벌어졌다. 분실물이 생겼을 때나 뭐 잘못한 사람을 잡아낼 때  흔히 하던 ‘눈 감고 들어’가 아니라 '두 눈 뜨고'였다.  


드디어 담임선생님은 ‘아버지 없는 사람 손들어’라고 너무나 무심하게 말했다. 이 소리에 뭔지 모를 긴장감이 돌았고 아이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하기야 집에 피아노나 전화기가 있는지와 '아버지 없는 사람'은 차원이 다르니까. 순간 나는 아버지 '사망'에 수치심과 굴욕을 느꼈다.  '아직 친구들도 사귀지 않았는데 스스로 이런 주홍글씨를 새겨야 하나, 이건 잔인한 형벌이야,  왜 두 눈뜨고 있는 이 많은 아이들 앞에 아버지 없음을 알려야 하나.....’ 수많은 생각에 머릿속이 엉켜버렸고 나는 손을 들지 못했다, 아니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아버지 없는 사람’이지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할 것만 같았다. 


눈 뜨고 하는 ‘손 들기’ 가정환경조사는 그렇게 끝이 났고 담임선생님은 교실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순간 벌떡 일어나 선생님을 쫓아갔다. 왜 그러냐는 선생님에게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안 계세요. 그런데 손을 들지 않았어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역시 담임선생님은 무심하게 ‘너 이름이 뭐니?’라고만 하셨다.


나는 돌아서면서 ‘그래 잘했어’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아버지’라고 부르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없는 사람 손들어'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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