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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Dec 07. 2020

저는 노래를 끊었습니다만

'도망자'로 끝난 '대학가요제' 사건 이후로 

나는 어린 시절 성당에서 그리고 소풍을 가면 노래를 불렀다. 좀 떨리기는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게 재미있었다. 


1977년 시작한 '대학가요제'는 많은 히트곡과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오디션 프로가 없던 그 시절, 가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중고교 때부터 대학가요제를 벼르고 벼르는 것은 당연했다. 대학가요제에 나가려고 대학에 간다는 말도 있었다. 


그 당시 나의 미국 대학생활은 억압이었고 단절이었다. 미주 대학가요제에서 뽑히면 한국의 대학가요제 출전권을 얻어 한국에 갈 수 있었다. 나는 가수로 데뷔하거나 스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독한 단절을 깨고 한국에 가고 싶어서 미주대학가요제에 출전하기로 했다. 


나의 절친 J 그리고 풍채 좋은 P와 팀을 만들었다. 수소문 끝에 LA에서 음악 꽤나 한다는 UC버클리 학생을 소개받았고, 나름의 오디션을 통과하여 곡을 받고 본격적인 노래 연습을 했다. 우리는 그 작곡가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연습에 몰두했고 노래실력에도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LA에 있는 한인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종의 예선전을 치렀다. 하나가 아니고 셋이라서 떨림도 덜했고 좋은 창작곡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 당시 한인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를 하던 이 장희 씨가 예선 심사를 했는데 우리 노래를 듣더니 만족해하면서 '잘하네, 세 학생 모두 한국에 갈 수 있는 패스포트에는 문제없지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아, 우리가 한국을 가는구나!' 했다. 마치 새장 문이 활짝 열린 것처럼 시원하고 신이 났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LA 한인타운 근처에 있는 작은 공연장에서. 우리는 하얀 블라우스에 청치마를 입고 연습 때처럼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박수 소리가 너무나 적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우리는 '뭔가 잘 못 됐다'는 것을 알았지만 떨리고 당황스러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불안했고 창피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우리는 대회가 끝날 무렵 아무 말 없이 뒷문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고는 학교 앞 카페에 널브러져 커피만 홀짝거렸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들으니 화음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나 때문이었을까?' 고심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도망자'로 끝난 대학가요제 사건 이후로 나는 노래를 끊었다. 노래는 끊었으나 지금도 오디션 프로를 보면 가슴이 뛴다. '아, 저렇게 잘 부를 수가... 고속도로 휴게소 음악이라 생각했던 트로트가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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