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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Apr 11. 2020

텅 빈 도시

그 소음이 그 모습이 그립다

나의 아침은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4월 10일 현재 확진자 501,778명 그리고 사망자는 18,694명이다. 어제와 비교하니 2,012명의 사망자가 늘어났다. 그리고 이 숫자는 시시각각 올라간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하여 그동안 내려진 주요 정부 명령과 지침은 아래와 같다.                     


날짜                    명령/지침 내용         

3월 13일         국가 비상사태 선포                                               

3월 19일          자택 격리 명령                                                    

4월 3일       헝겊을 사용하여 얼굴 가릴 것                                           

4월 5일  ‘앞으로 2주간 마켓도 약국도 가지 마라’                          

4월 5일  ‘일본 진주만 공습처럼 참혹할 것이다’                                


'얼굴을 가려라'


손만 씻으면 된다, 마스크를 쓰는 것보다는 손을 씻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침이 있었으나 결국 4월 3일 질병관리국은 헝겊을 사용하여 얼굴을 가릴 것 (Use of Cloth Face Covering)을 지시했다. 중요한 것은 마스크를 쓰라는 것이 아니라 헝겊으로 얼굴을 가리라는 것이다. 


지난 3월 30일에는 UCLA 대학병원의 간호사들이 손팻말과 자신의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조용한 촛불시위를 열었다. 간호사들은  마스크와 가운, 안면 보호대는 물론 소독용 물티슈도 부족하며 연방정부가 결함이 있는 인공호흡기를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전달했다고 항의했다. 그리고 “우리는 동료 간호사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4월 2일에는 뉴욕의 몬테피오레 메디컬센터 간호사들이 시위를 벌였다. 한 의료진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요한 처치 때만 N95 마스크를 쓸 수 있다. 그것도 한 장으로 사흘을 써야 한다. 보호장비가 너무 부족해서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최전선에서 사투 중인 의료진도 N95 마스크가 없다는데 내가 N95 마스크를 쓴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써서도 안된다. 현재 매체와 온라인에는 두건 또는 헝겊을 이용한 간단한 마스크 만들기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마스크 제조회사는 3M이며 세계 2위는 허니웰이다. 그리고 둘 다 미국 회사다. 그런데 왜 미국에서는 3M과 허니웰에서 만든 마스크를 구경할 수도 없을까? 3M과 허니웰 상표를 붙인 마스크의 대다수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마스크 원단 면방직 회사도 몇 개 없다고 한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폐업하거나 생산시설을 해외로, 아마도 중국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 남아있는 면방직 중소기업인 파크데일의 최고경영자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N95 등급 마스크는 불가능하고 일반용 3겹 마스크만 생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N95 등급  마스크의 하루 생산량은 100만 장이고 이는 한국 생산량의 10%라고 한다.


'4월 19일까지는 마켓과 약국도 가지 마라'


지난 5일 백악관 코로나 대응 태스크포스 조정관인 데보라  벅스는 ‘세계 1·2차 대전 이후 이런 숫자를 본 적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 2주간 마켓도 약국도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모든 것이 급작스럽다. 4월 5일 전에는 꼭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이른 아침 마켓의 시니어 아워 (미국에서는 관계 기관에 따라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55세 이상을 시니어라고 한다)에 가서 장을 봤지만 이 경고가 나온 이후로는 마켓에 가지 않는다. 


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취약한 연령이고 지금은 무늬도 안 되는 몹시 부실한 보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원 보호장비도 부족한 나라에서 이 무서운 전염병과 싸우려면 지침대로 따라야 하니까.  결정적으로 아프면 담당의사에게 연락하라는데 나는 그 ‘담당의사’가 없으며 현재 미국의 개인병원은 새로운 환자는 받지 않는다. 그래서 ‘이럴 때 절대 아프지 말아야지, 아프면 큰 일이야’를 되새긴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햇살이 뜨거운 캘리포니아에서는 자칫하면 온 얼굴에 기미가 가득하고  피부암에 걸리는 사람도 적잖다. 그런데 이번 주 내내 밤낮으로 비가 온다. 이 사막에 생뚱맞은 장마가 왔다 그리고 춥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부터 몸이 무겁고 목이 아프다. 혹시? 요즘 모든 증상의 끝은 코로나바이러스다.  집에 있는 감기약을 열심히 먹고 있다. ‘이거라도 사둔 게 얼마나 다행이야..’라며.


내가 사는 아파트는 신도시에 지어져  깔끔하고 주위 환경이 쾌적하다. 집에서 울창한 가로수길을 13분만 걸어가면 두 개의 대형마켓, 세 개의 주요 은행, 병원, 약국, 유치원 그리고 30개가 넘는 유명 점포가 한 곳에 모여있다.  그 가로수길은  온종일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붐볐었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엄마에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루 한 두 번 아마존과 UPS 트럭만 쓸쓸히 지나간다.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온라인으로 장을 볼 수도 없다. 아마존 프래쉬를 이용하는 젊은 층과 간혹 동네 마켓의 딜리버리를 이용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직접 마켓에 간다.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은 마켓에 가는 것이 중요한 일과이며  내가 구입할 물건을 직접 고르는 재미도 쏠쏠한 것이기에…


4월 19일 까지면 아직 일주일 이상 버텨야 한다. 이제 냉장고 털기에 돌입했다. 우유, 빵, 과일, 야채는 없지만 그래도 냉동실에 생선과 떡국떡 그리고 몇 가지 냉동식품이 남아있다.  남은 식재료와 날짜 계산을 해가면서 나눠 먹어야 한다. 과연 4월 19일 이후에는 마켓에 갈 수 있을까? 


아이들 소리, 자동차 소리, 옆 집 차고 열리는 소리, 저 멀리서 들리던 강아지 짖는 소리...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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