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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Sep 15. 2020

'무심한 듯 시크하게'

타인의 고통에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까? 호들갑으로 아니면 무심한 듯 시크하게? 호들갑은 가볍고 요란하지만 '무심한 듯 시크하게'는 배려와 고도의 인내심이 요구된다.  


과연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제대로 공감할 수 있을까? 사건을 실제로 겪는 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닿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 각자는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는 일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들갑을 떨면서 당사자의 마음을 다시 한번 휘저어 그 고통스러움을 자극할 것인지 아니면 무심한 듯 시크하게 그 상처를 희석할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크게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60대 부부의 딸은 이미 이혼을 결정했고 부모에게 통보했다. 부모는 날벼락을 맞았고 왜 이혼을 하기로 했는지, 이혼을 철회할 수는 없는지 속이 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딸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딸과 함께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었다. 딸이 이혼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맛있는 밥만 먹었다. 그런 무심한 듯한 시간은 딸과 부모에게 힐링의 시간이 되었고 그녀는 힘차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이 무심한 듯 시크함에는 고도의 애정과 인내심이 깔려있다. 


남편을 하늘로 보낸 L 씨는 홀로서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수십 년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교회에 가는 게 힘들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쩌냐, 괜찮냐,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라고 심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처를 후벼 파는 질문에 화가 나서 "40년을 함께 산 남편이 죽었는데 내가 어떻게 괜찮겠냐. 나한테 그런 질문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가깝지 않은 사람이 다가오더니 "맛난 거 사 먹으라"며 주머니에 뭔가를 찔러 넣었다. 집에 와서 보니 곱게 접은 100달러 지폐였다. L 씨는 그 무심한 듯 시크한 배려에 '찐' 위로를 받았다. 


스탠퍼드 대학과 하버드 MBA 출신의 아들이 월가에서 수백만 불을 벌다가 초라한 자기 사업을 한다고 해도, 그리고 하루아침에 사업을 접고 여행을 떠난다 해도 호떡집에 불난 듯 열을 내지 말고 무심한 듯 시크해야 한다. 


졸업하면 뭐할 건지, 취직은 어떻게 됐는지, 사귀는 사람과는 어떻게 됐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애는 언제 낳을 것인지, 돈은 많이 모았는지.... 물어보고 따져보고 싶어도 우리는 최대한 무심한 듯 시크해야 한다. 


호들갑은 필요 없다. 내 경험이나 내 삶의 방식이 타인에게는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을 진짜로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도의 절제와 인내심이 장착되어 있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는 공감과 힐링을 가져올 수 있다. 마치 모델의 정지된 포즈와 무심한 듯 차가운 표정에 빠져버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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