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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Aug 31. 2020

'10억'은 이제 까였다

2000년대 초 우리 모두는 10억에 열을 올렸다. 많지 않은 월급으로 자린고비 생활을 하면서 쌈짓돈을 굴려 10억을 만드는 비법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 당시 1억 원의 파워는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은행 정기예금 이자는 8%가 넘었다. 그러니까 1억을 은행에 맡기면 세금을 제하고도 내 손에 70만 원이라는 수익이 생기던 시절이다. 재테크 전선에 뛰어들어 10억을 만들면 편안한 노년생활이 가능하다고, 돈의 구속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나의 꿈 10억 만들기", "부동산으로 10억 만들기", "10억을 만든 사람들의 IQ EQ" 등 10억 만들기를 주제로 한 재테크 책이 인기였다. 포털 사이트와 강연회 그리고 유료정보 사이트에서도 '10억'이 성황이었다. 어떻게 하면 땀 흘려서 번 돈을 금용상품, 주식, 부동산, 경매, 절세 등을 통해 자산을 2배, 3배로 늘려 누구나의 꿈이었던 '10억'을 만들 수 있을까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실지 10억이라는 돈은 박봉에 시달리는 서민에게는 거의 상징적이고 위화감을 주는 숫자였다.  


2020년 10억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10억의 위상은 여전하다. 무일푼에서 1억을 만들려면 한 달에 100만 원씩 모으면 8.3년, 150만 원씩 모으면 5.5년 그리고 200만 원이면 4.1년이 걸린다. 그리고 2019년 기준 대기업과 주요 공기업의 초임 평균 연봉은 3800만 원이라고 한다. 


세월은 많이 흘렸지만 10억 모으기는 여전히 어렵다. 어떻게 해서라도 순소득을 올려야 하고, 남들처럼 살면 안 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정리도 필요하고, 최소한의 지출로 살아야 하고, 재테크 공부를 하고 돈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래도 어렵다, 잘 안된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이 점점 심해져 서민의 소득 상승은 여전히 초라하다. 야박하게도 은행금리는 1% 미만이며 서민층이 겪는 인플레이션율은 훨씬 높다.  


2020년 10억은 어디쯤 와 있을까? 전셋집을 알아보던 나는 10억의 초라한 위치를 알게 되었다. 강남 변두리 지역의 새로 지은 브랜드 아파트 25평 전세는 12억, 33평은 15억이다. 강북의 깔끔한 25평도 7억, 지하철이 연결된 경기도의 30평도 7억이 넘는다. 매매 가격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알던 그 10억은 이제 힘이 없다 그리고 씁쓸하다.  


아직도 1억은 어렵고 10억은 근접하기 어려운 액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 위엄했던 최강의 10억은 이제 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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