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에게 월세는 족쇄다
월세는 무섭다. 취업을 못해도, 실직을 해도, 병이 나서 일을 못해도, 사업이 망해도 월세는 내야 한다. 그리고 월세 내는 날은 꼬박꼬박 돌아온다. 아니 돌아서면 또 온다. 전세에 살면 실직을 해도 우선은 김치와 콩나물로 버틸 수 있으나 월세는 봐주지 않는다.
미국의 노숙자 인구는 350만 명이 넘는다. 전 세계가 부러워한다는 강대국인데 노숙자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높은 집값과 서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월세가 가장 큰 이유다. 대도시의 월세는 서민들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리고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은 길가로 내몰린다. 노숙자 중에는 마약, 알코올 중독, 도박, 정신질환이나 가정폭력 때문인 사람도 많지만 노숙자 4명 중 1명은 풀타임으로 일하고 심지어는 투잡을 뛰는 경우도 있다. 미국 IT 심장인 실리콘밸리나 샌프란시스코에는 집을 사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월세조차 힘들어 차량이나 캠핑카에서 살고 있는 '차량 거주 홈리스'가 거리를 점령했다. 이들은 차에서 쪽잠을 자고 인근 대학 체육관에서 간단한 샤워와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한 달에 15달러를 지불한다고 한다.
미국의 코로나는 유사시 아니 전쟁이다. 노동부는 현재 실업수당을 받고 있는 실업자는 대략 3200만 명에 달하고 지난주(7월 12∼18일) 신규 실업수당 신청 건수는 142만 건이라고 발표했다. 전국 다가구 위원회 (National Multifamily Housing Council)의 통계에 따르면, 3분의 1 이상의 세입자들이 월세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미국의 대다수 주정부는 퇴거 중지 명령을 통해 세입자가 월세를 못 내도 집주인이 강제 퇴거시킬 수 없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이 같은 퇴거 중지 명령은 대부분의 주에서 8월이면 종료될 예정이다. 퇴거 중지 명령이 사라지면 2800만 명의 세입자가 강제 퇴거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노숙자 비율이 20-40% 증가해 150만 가정이 노숙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실직 후 3개월 내 재취업에 실패하면 노숙자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유사시 월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경제적 웰빙 보고서'를 보면 성인의 40%가량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비상금 400달러 (48만 원)가 수중에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차량 수리비나 냉장고가 고장 나서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해야 할 때 40%는 돈을 빌리거나 무언가를 팔아야 하거나 또는 전혀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미국인 절반 이상은 응급상황 시 대처할 비상금이 1000달러 (120만 원)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심히 일하는데 왜일까? 서민들은 수입의 50-70%를 그 무서운 월세로 다 써야 하기 때문이다. 월세 내기 바빠서 저축은 언감생심이다.
살다 보면 코로나가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힘든 때가 찾아온다. 그럴 때 숨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우리 한국만의 '전세'다. 미국 친구나 미국에서 자란 아들에게도 한국의 '전세'제도를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부러워한다. "월세에 살면 된다" " 월세가 전세보다 낫다"는 세상 물정 모르는 말이다. 서민에게 월세는 족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