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Tree Aug 03. 2020

'전세'를 살려주세요

'전세'는 비빌 언덕입니다

미국 이민자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면 노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글이 많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더욱 많아졌다. 나이 먹은 사람에게 미국보다 한국이 살기 좋은 결정적인 이유는 주거형태의 '옵션'이 있다는 것과 좋은 의료시스템이다. 


어디나 마찬가지로 미국도 극소수 최 상류층은 그들만의 소비형태로 살아간다. 그러나 대다수 계층은 거의 다 비슷한 외식을 하고, 같은 마켓을 가고, 그만그만한 브랜드 옷을 사 입고 그리고 비슷한 주거형태 속에서 산다. 


미국의 주거형태는 자가 아니면 월세다.  물론 젊은이들 중에는 셰어하우스도 간혹 있지만.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동네, 차 타고 가다가 또는 집 거실에 앉아있다가 어디선가 날아오는 총에 맞아 죽지 않을 안전한 동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내게 불편하지 않은 인종 분포 그리고 좋은 학군을 따지다 보면 이미 집값과 월세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돼버리고 만다. 


미국 내 대도시의 월세 비중은 50-60%에 이르고 소득의 45% 이상을 월세로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대도시 가운데 집값은 물론 아파트 월세가 가장 비싼 곳은 샌프란시스코로 콧구멍만 한 방하나 아파트 월세는 적어도 420만 원이고 방 2개짜리는 570만 원에 이른다. LA에서 2시간 이상 떨어진 좀 쾌적한 외곽지역의 아파트도 방 하나는 280만 원, 방 둘은 330만 원이다.  매년 월세는 폭등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가계 수입 증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소득이 적은 젊은이나 저소득 가정은 외곽지역이나 아예 집 값이 싼 타주로 이사를 한다. 한 달 한 달 월세 내기도 벅찬데 집 장만은 먼 나라 이야기다. 전문직 고소득자, 주식 대박 또는 돈 많은 부모가 도와주기 전에는. 미국의 주거 옵션은 이렇게 빡빡하다. 


한국의 주거 옵션은 자가, 전세, 반전세, 월세가 있으니 다양하다. 주거뿐만 아니라 다른 소비패턴에도 꽤 많은 옵션이 있다.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슈퍼에서 한 끼 식재료로 20만 원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래시장이나 우리 농수산물 매장의 세일 코너를 이용해서 만 원에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 한 켤레에 몇 만 원 하는 덧버선도 있지만 만원에 15 켤레 하는 덧버선도 있다. 그런데 그 저렴한 덧버선도 신을만하다, 아니 너무 좋다. 밥도 한 끼에 30만 원짜리 호텔식도 있지만 장터에는 아직도 3,000원짜리 막국수도 있다. 미국에는 이런 재미와 옵션이 없다. 한 달에 천만 원 버는 사람이나 백만 원 버는 사람이나 같은 마켓과 같은 식당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면 '전셋집'을 얻어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안심이고 최고의 옵션이다. 그런데 이제 전셋집이 사라지고 가격이 하루 사이에 무섭게 올라간다니 비빌 언덕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집이 없는 사람, 지금 당장 집을 살 수 없는 사람도 월세 걱정을 안 하고 살 수 있는, 그래서 종잣돈을 모을 수 있는 그 좋은 옵션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스크 착용은 '개인의 자유 침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