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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Mar 14. 2022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미국 병원비

개인파산의 70%는 병원비

공공 의료서비스는 한 국가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우리나라는 국가에서 의료보험 제도를 실시하기 때문에 전 국민이 가입할 수 있는 건강보험제도가 있지만 미국에는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공공 의료서비스가 없다. 물론 극빈자를 위한 의료서비스 ‘메디케이드’와 6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어’가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민간 보험을 들어야 한다. 


메디케이드의 혜택을 받을 정도로 극빈자는 아니지만, 보험에 들 여유가 없으면 각자도생이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리고 보험이 있어도 웬만큼 아프기 전에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 각 보험에는 ‘디덕터블’이라는 가입자 우선 부담금이 있어서 보험회사가 의료비 지불을 시작하기 전에 매년 보통 $4,000 - $10,00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보험제도와 병원비 내역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일반인은 아무도 없다. 보험 플랜은 크게 보험사와 계약된 병원과 의사만 만날 수 있는 HMO상품과 자유롭게 병원을 고를 수 있지만 그만큼 비싼 PPO상품이 있다. 


내 보험이 HMO인데 응급 상황이 벌어졌을 때 주변에 내 보험사와 계약된 병원이 없으면 병원 한 번 못가보고 그냥 죽을 수도 있다. 긴급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내 보험과 계약이 안되어 있는 의사로부터 수술을 받게 되면 그걸 아웃 오브 네트워크 (out-of-network)라고 하는데, 이경우 보험처리가 안되거나 비용이 몇 배로 늘어난다. 환자는 진료받기 전에 보험사가 지급 거절할 경우 본인이 전액 부담하겠다는 항목에 서명해야 한다. 


또한 의료비와 별개로 ‘시설 이용료’라는 것도 따로 청구하는데 의자, 책상, 엘리베이터, 병원복도 등을 사용한 비용으로 병원 운영비를 환자가 부담하는 것이다. 


미국 병원비는 한국처럼 퇴원 시 원무과에 일괄적으로 한 번에 납부하는 게 아니다. 병원에서 벌어진 모든 행위를 최대한 세분화해서 심하면 일 년 내내 청구서가 줄줄이 날아온다.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은 사람은 우체통을 열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여하튼 미국의 보험체계는 일반인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엉켜있고 생각지 못한 변수도 무수히 많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의료시스템으로 환자는 번거롭고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초음파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담당의사 오피스에 전화해서 예약을 해야 하는데 보통 2주는 기다려야 한다. 담당의사는 초음파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방사선 전문의에게 예약을 할 수 있는 리퍼럴 (referral), 즉 일종의 닥터 노트를 적어준다. 이 리퍼럴을 가지고 초음파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예약을 하는데 적어도 3주는 기다려야 한다. 초음파 검사 후에는 다시 담당의사와 예약을 잡아서 검사 결과를 듣는다. 결국 초음파 검사를 받기 위해서 세 번의 예약을 해야 하고, 장시간 기다려야 하고, 세 번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 병원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  자연 출산하는데 3천만 원,  쌍둥이 + 제왕절개 + 한 달간 인큐베이터는 4억 6천만 원, 안과의사 10분 만났는데 80만 원, 응급실은 기본이 천만 원, 두통으로 신경과 전문의 잠깐 만났는데 90만 원, 폐암으로 일 년 반 동안 치료를 받은 사람의 총병원비는 자그마치 78만 불 그러니까 지금 환율로 하면 9억 6천만 원에 이른다.  


미국에서 좋은 보험 없이 아프면 파산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실지 미국 개인파산의 70%는 의료비 때문이다. 그리고 의료비로 파산하는 사람들의  20%는 55세 이상이다. 미국 사람들의 40%는 코비드 기간 중에도 코비드보다 병원비를 훨씬 더 무서워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실지 미국의 한 여성이 신종 코로나로 4개월간 입원한 뒤 받은 총병원비는 자그마치 285만 달러(현재 환율로 약 35억)였다.


보험료를 많이 커버해주지 못하는 영세기업 근로자, 자영업자, 프리랜서, 파트타임 근로자, 저소득으로 좋은 의료보험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실업자에게는 마마 호환보다 무서운 게 병원비다. 그래서 “아파도 집에서 죽는다”는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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