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Tree Nov 09. 2022

비행기 좌석에 집착하다

나는 1979년부터 지금까지 대한항공의 고객이다. 나름 프리퀀트 플라이어 (frequent flyer), 즉 상용고객이지만 나의 마일리지 숫자는 초라하다. 일이 년에 한 번씩 가는 한국 여행, 마켓과 소소한 쇼핑에 쓰는 신용카드로는 마일리지가 좀체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대량 구매가 발생하는 사업을 하거나, 소비규모가 큰 사람 또는 넉넉한 마일리지를 가지고 있는 가족과 묶여있다면 마일리지 사용하는 재미가 쏠쏠하겠지만 조용한 미니멀리스트는 어림없다. 


비행기의 프레스티지석은 고령자와 건강상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엄청난 진가를 발휘한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TV를 들다가 허리를 다쳤다.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내 허리는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허리를 요리조리해봐도 편치 않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면 처음 2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그 후로는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별 짓을 다해도 소용없었고 그 통증은 골반 엉덩이에서 발가락까지 퍼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비좁은 공간에서 다리를 펴지 못한 자세로 움직이지 못하니까 종아리와 발이 퉁퉁 부어 신발을 신을 수가 없었다. 하지의 심부정맥에 혈전이 생겨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3등석 증후군'에 시달린 것이다. 두 다리를 접을 수도, 하늘로 올려버릴 수도 없으니 괴로웠다.  


13시간의 비행시간 내내 잠 한 숨 못 자고 계속 뒤척이다가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하겠습니다."라는 기내방송과 짐 리브스의 'Welcome To My World'라는 부드러운 노래가 흘러나오면 "아 이제 살았구나"했다. 


나의 '3등석 증후군'과 비애는 수십 년 계속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대한항공 3등석을 타고 한국을 오갔다. 언젠가 한 번은 앞 좌석이 없는 비상구 자리에 앉아 기내 전등이 다 꺼지고 사람들이 잠에 들면서 승무원들도 보이지 않을 때, 좌석 앞 빈 공간에 담요를 깔고 살짝 누워버린 적도 있었다.  


55살이 넘어가면서 몸에서 보내오는 여러 가지 신호로 3등석에서 13시간의 비행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수년간 피땀 흘려 모은 마일리지를 이용하거나 온갖 것을 포기하고 프레스티지석 티켓을 구입했다. 늦은 밤 비행기를 타는 나에게 기내식과 서비스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넓고 누울 수 있는 좌석에서 내 허리와 다리 둘 곳이 있다는 것과 '3등석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위안이었다.  


내년 봄 한국에 갈 계획을 세우면서 항공권을 알아보다가 나는 좌절했다. 코로나 전에는 약 3,200달러 했던 프레스티지석 항공권이 이제는 6,000달러가 넘는다. 그리고 마일리지 좌석은 내년 이맘때로 조회해도 무조건 매진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여행을 못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천문학적 숫자의 마일리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고 그리고 아무리 비싼 가격에도 기꺼이 내 돈으로 사겠다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 한다.   


나는 이제 까인 거다. 그래도 나는 프레스티지석을 열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 알고 있는 걸 학교에서 배웠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