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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Dec 18. 2022

1971년의 크리스마스

1971년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12월은 일 년 중 가장 바쁘고 설레고 신나는 달이었다. 


우선 친구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카드를 내 손으로 만들었다.  문방구와 그 당시 명동의 상징이었던 ‘코스모스백화점’에 가서 여러 가지 그림 재료를 구입했다. 두껍고 고급스러운 종이와 여러 가지 색채가 있는 사인팬 세트 그리고 반짝이도 샀다.  카드를 보낼 친구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어떤 그림을 그릴지 판매용 카드를 곁눈질하면서 한땀 한땀 그렸다. 12월의 이 중요한 일을 위해 주말이면 친구들과 모여 열심히 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손으로 만드는 크리스마스 카드는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CD는 물론 카세트테이프도 없던 그 당시 좋은 음악을 듣는 방법은  라디오 심야방송, 레코드판 그리고 길거리 레코드 가게에서 들려오는 거리의 음악뿐이었다. 12월 버스정거장 앞의 레코드 가게에서 들려오는 영어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면서 마치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그런 설레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렇게 나는 12월의 버스정거장에서 크리스마스를 만끽했다. 


12월 한 달은 저녁 외출이 허락되었고 늦은 밤 귀가도 가능했다. 그 당시 나는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다녔는데 매년 성탄절 연극에서 크고 작은 배역을 맡아 그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대사를 외우고 연습하고 의상을 챙기고, 무엇보다 밤에 친구들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흥분되고 즐거웠다. 1971년 12월에도 나는 저녁이면 성당에 가서 그렇게 연극 연습을 했다. 그리고 성당에 가는 그 겨울밤은 춥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뭐니 뭐니 해도 1971년 크리스마스의 하이라이트는 내 친구 C의 집에서 열린 파티였다. 여자 친구들끼리 모여서 노는 일은 허다했으나 이 날은 우리가 픽한 남자애들도 초대를 했기 때문이다. 6형제의 막내인 나의 엄마는 주로 한복을 입으시던 구식 엄마였지만, C의 엄마는 젊고 예쁜 양장을 입으시던 신식 엄마였다. C의 엄마는 이런 파티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기꺼이 장소를 제공해주시고 맛난 음식도 차려주셨다. 우리는 나름 파티장을 어떻게 꾸밀지 머리를 맞대고 키득거렸다. 


우리는 평상시 찜했던 나름 우리 학교의 킹카들을 엄선해서 초대했다. 우리의 리스트에는  늘 전교 1등만 하던 , 정말 잘생긴 , 유머감각이 뛰어난 그리고 운동을 잘하는 남자애들을 초대했다. 교실과 운동장에서 잠시 지나치던 남자애들과 한 공간에서 파티를 한다는 게 우리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드디어 우리는 C의 집에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고 학교에서는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면서 그렇게 1971년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이제 얼굴조차 희미한 그 친구들은 2022년의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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