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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May 01. 2023

서울 그리고 안녕

다시 만날 그때까지

3년 만의 한국여행 준비는 우선 항공권구입과 호텔예약부터 만만치 않았다. 3년 전과 비교해서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을 적어보니 10가지가 넘었다. 나의 한국방문준비는 그렇게 3개월 전부터 시작됐다. 


코로나기간 동안 그리워하던 LAX 공항 냄새를 맡았고, 그 하늘색 국적기를 탔다. 새벽 5시에 도착한 공항은 여전히 고요했고 친절했으며 너무나 깔끔해서 바닥까지 반짝거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안도감과 포근함이 밀려왔다. 


내가 탈 공항버스 출발시간은 오전 6시 30분, 그리고 6시에 후드코트 셔터가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마치 기차역 가락국수를 먹으려는 기세로 뛰어들었다. 국숫집 아주머니는 버스 출발시간 전에 먹고 갈 수 있다면서 만두와 시원한 멸치국물 가락국수를 후다닥 말아주셨다. 종이같이 얇은 만두피가 식감을 더하고 가락국수는 가슴까지 따뜻하고 시원했다. 


삼성동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거의 30년 전부터 자주 다녔던 식당에 들렀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사원증 목걸이를 한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30년 전 나의 점심시간이 떠올랐다. 12시 땡 하면 뛰쳐나와 떠들고 웃으면서 먹던 그 점심, 그리고 커피와 태극당 모나카를 사 먹던... 식당 안을 꽉 채운 그들을 보면서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로 시작하는 국어교과서의 '청춘예찬'이 떠올랐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청춘'이었지만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음을 이제 나는 안다. 


4월 1일, 테헤란로 골목에서 쏟아지는 벚꽃을 만났다. 우연히 접어든 골목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흩날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면서 순간 넋이 나갔다. 순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의 푸르디푸른 등나무와 진동하는 아카시아 꽃 내음 추억이 뒤엉켜 춤을 췄다.  


서울 대로변은 깨끗했고, 가로수도 많아졌고 거리화단도 예쁘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버스정류장의 쉼터에 깜짝 놀랐고 감탄했다. 냉난방기· 공기청정기· 무료 와이파이· 핸드폰 무선 충전기 그리고 내가 앉은 의자에는 온열장치까지 되어 있었다. 작은 카페 같은 이 공간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을 얼마나 배려한 것인가!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미국에는 버스 이용자가 많지 않지만 제대로 된 밴치 하나 없는 버스정류장이 수두룩하다. 캘리포니아처럼 타오르는 태양에 기온이 35도를 넘어도 내 몸을 가려줄 그 어떤 것도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스마트하고 인간적인 '배려'가 눈물 나게 고마운 거다.


내가 묵은 호텔 정문 2미터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이번 여행동안 141, 361 그리고 242번 버스는 내 전용차였다. 출퇴근시간만 살짝 피하면 거의 빈 버스였고, 기사님은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고 무엇보다 깨끗하고 쾌적했다. 내가 가야 할 곳을 요리조리 데려다주는 버스는 너무 편리하고 그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지금도 "삑, 하차입니다, 환승입니다"라는 버스 단말기 음성안내가 귓가를 맴돈다. 


하루는 예약 없이 운전면허 시험장에 갔는데 30분도 채 안 돼서 운전면허를 내 손에 쥐고 나왔다. 놀라운 스피드와 편리함에 계속 웃음이 나왔다. 미국에서는 석 달 전에 예약을 시도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예약을 해도 반나절은 걸려야 하니까. 이번 여행 중 은행, 세무서, 병원 (대형병원, 개인병원), 운전면허장 등에서 일을 봤는데 내 결론은 신속하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일이 되도록 최대한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게 사람 마음을 얼마나 편안하게 해 주는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특히 나이 먹은 사람에게...


물론 대기질 지수 (Air Quality Index)가 300이 넘는 그런 날도 있었지만, 내 편안한 마음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여행 중이니 하루에 적어도 두 끼는 외식을 해야만 했는데 가성비 좋은 음식에 세금과 팁을 내지 않아도 되는 그 가벼움과 자유로움이란....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마치 억지로 떠나는 이민길 갔았다. 나는 벌써 141번 버스 차장밖 그 서울거리가 몹시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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